2019. 6. 21. 23:52ㆍ글쓰기 우당탕탕
여행기를 쓰고 나면 블로그에 올릴 글을 쓸 집중력이 사라진다. 여행기가 유독 잘 써지지 않는 날이라면 더 그렇다. 그럼 오늘 하루는 쉴까, 슬그머니 유혹의 말이 속삭인다. 눈도 뻐근하고 일찍 자고 싶잖아. 이거 쓴다고 뭐 크게 달라질 게 있겠어? 하나도 없어. 그냥 하루 넘어가는 것뿐이야. 오늘 못 썼으면 내일 쓰면 되지. 그렇다고 오늘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잖아. 가만히 듣고 있던 난 하긴 그렇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일 찰나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아냐, 그럴 순 없지 오늘 같은 날은 오늘밖에 없어. 오늘은 한 번뿐이니 오늘 느낀 건 꼭 지금 써야만 해. 안 그러면 쓰지 못할 거야. 오늘 미루다 보면 끝없이 늘어질 거야. 맞아. 난 겁이 많아서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이 될까 무서워. 뭐라도 써야겠어. 그렇게 쓰고 있는 글이 이거다.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고통의 날 때문에 외출을 하지도 그렇다고 걱정 없이 푹 쉬지 못한 날, 한 거라곤 낮잠을 자고 일어나 여행기 초고를 쓴 게 다인 하루였다.
아, 책도 읽었다.「바깥은 여름」을 읽는 중이다. 읽다 보면 와,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지, 감탄하게 된다. 내 마음과 꼭 맞는 문장.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내 스쳐가는 생각과 고여 있는 감정을 툭 건드리는 문장. 내가 쓰고 싶은 문장이었다. 이런 문장을 읽고 있자면 과연 난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라는 우울한 자문을 하기 시작한다. 책을 읽을 땐 좀 편하게 읽으면 좋으련만. 읽고 나면 작가라는 존재는 나와 너무 먼 이야기 같을 때가 많다. 툭 던지는 말 한마디에 허를 찔린 사람처럼 벙쪄서 문장을 읽고 또 읽어본다. 페이지를 넘겼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후루룩 넘겼다가 다시 보기를 반복한다. 일정한 모양의 구슬을 꿰듯 반듯하고 안정적인 글이다. 들쑥날쑥하지 않고 단정하다. 아,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 결론은 항상 같다. 거기서 끝나면 좋으련만 엉뚱한 구슬을 꿰고야 만다. 불안의 구슬. 걱정의 구슬을.
이런 내 감정을 잘 기록해두면 언젠가 내 글에 쓰일 날도 오겠지, 하는 이상한 생각을 하며 나를 달랜다. 나도 이렇게 매일 쓰다 보면, 내 감정을 잘 들여다보고 글을 열심히 읽고 쓰다 보면 그런 글을 쓸 수 있을 거야. 구슬 꿰듯 말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게 만드는 문장을. 오늘은 문장 대신 다른 걸 구구절절 엮었지만. 그래도 괜찮아. 언젠간 올 거야. 단정하고 예쁜 구슬을 생각하며 내가 써 내려갈 문장을 상상한다. 언젠간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글쓰기 우당탕탕'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림을 통해 부처님의 뜻을 전하고 싶어요.” 시율 이채원 불화장인 인터뷰 (0) | 2019.12.15 |
---|---|
쓰는 사람으로 임명합니다 (0) | 2019.07.04 |
합평의 세계에서 발버둥 (0) | 2019.06.20 |
불안은 구구절절 (2) | 2019.06.19 |
소설을 쓰는 마법 같은 순간 (0) | 2019.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