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구하기⑩물러도 너무 물러서

2019. 7. 6. 23:57에세이 하루한편


차라리 처음부터 부동산을 통해 계약했다면 이렇게까지 머리 아픈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직거래 사이트를 통해 방을 보고 계약 의사를 전한 나는 직거래대필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부동산을 통해 계약하기를 원한 거였고 결국엔 대필을 원하는 세입자의 입장까지 신경 써가며 전전긍긍한 신세가 됐다. 오늘 아침 부동산에 다시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부동산 쪽에서는 세입자에게 부담을 준 적이 전혀 없다고 했다. 오히려 집주인에게 세입자에게는 아무 말 하지 마세요, 하고 말했다는 거다. 그러나 세입자는 집주인이 자신에게 복비를 내라고 말 했단다. 결국엔 중개인이 건물 주인에게 복비를 요구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머리가 아팠다. 일이 또 이렇게 꼬이는구나. 세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입자는 자신과 집주인은 복비를 내지 않는 조건으로 직거래 사이트에 방을 올린 거라며 일체 부담 없이 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말했다. 자신이 직접 부동산에 올린 것도 아닌데 왜 복비를 내야 하느냐며 따졌다. 그 뜻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을 쏘아붙였다. 그럼 집주인 분하고 다시 이야기해볼게요. 아뇨, 사모님한테도 복비 내라고 하실 거면 제가 이 계약 취소하라고 할 거예요. 계약금 돌려드리고 다른 분 찾겠다고 할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확정일자까지 다 밭은 계약을 취소할 순 없었다. 사모님, 사모님 하며 집주인을 감싸는 목소리가 단호하고 매서웠다. 나도 억울한데. 부동산이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게 억울한데 훈계조의 말투로 쏟아지는 이야기를 다 들어줘야만 했다. 자기가 무슨 수로 계약을 취소하고 계약금을 돌려주게끔 한다는 건지 말이 안 되는 소리였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합의점을 찾아야 했다. 다시 부동산에 전화해 복비를 우리만 조금 더 내는 식으로 해주고 집주인과 세입자는 아예 내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빠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며 그냥 취소하라고 부추겼지만, 엄마는 차분히 상황을 풀어가려고 했다. ‘20만 원이 넘지만 20만 원만 달라던수수료에서 8만 원을 더한 28만 원을 주기로 했다. 계약서상에 그렇게 적혀있었으니 제 금액을 주는 거로 생각하려고 해도 뭔가 억울했다. 나만 당하고 나만 아쉬운 것 같았다. 힘이 빠지고 머리가 멍해졌다.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부동산과 세입자 양쪽 비위를 다 맞추고 있는 것 같아 진이 빠졌다. 아니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야. 이 집을 이렇게까지 애쓰며 들어가야 하나. 두부같이 물러서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막연한 비관에 잠기기도 했다. 하나 배운 것이 있다면 모든 것에 증거를 남겨야 한다는 것. 구두로 설명한 것과 문자나 글로 남기는 것은 다르니 확실히 해둘 것. 결국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내가 바보였다. 순진했다. 그리고 똑 부러지게 말할 건 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사를 하기 전부터 이렇게 힘이 드니 과연 새로운 곳에서 난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 수 있을까. 벌써 안 좋은 기억들이 쌓여 가는데.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 물러터진 소심이는 또 한 번 주춤한다. 휘청거리고 비틀거린다. 내공이 쌓이려면 한참 남았나 보다. 집 구하기 에피소드는 충분히 나왔으니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더 이상의 갈등은 거부다, 거부

(출처 : 자까 대학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