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어딘가로

2019. 7. 7. 23:40에세이 하루한편


대학교 동창 H를 만났다.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보던 사이라 우리의 시간엔 늘 공백이 있었다. 근황을 물으면 막 일어난 근래의 일을 말해야 할지, 일 년 중 가장 인상 깊은 일을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내 일 년을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게 아쉬워서 머리를 굴렸다. 내 입에서 나오는 문장이 그동안의 시간을 잘 대변해주기를 바라면서. 말하기도 떠올리기도 쉬운 건 최근의 일이었으니 전자를 택했다. 독립에 대해, 방 하나를 구하기 위해 소비했던 한 달에 대해, 서울의 집값에 대해, 서울에서 사는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근황 대신 최근 가장 재밌는 일이 뭐였냐고 물었다. 대부도에 놀러 가 했던 게임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대화가 끊기면 다음엔 뭘 말할까 생각했다. 점심을 먹고 자리를 옮겨 카페에 갔다.

HSNS 계정으로 팔로우한 동기들의 근황을 봤다.’ 따로 연락하는 사이가 아닌 이들이었다. 모두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다행이었다. 보지 못했던 이들에 대한 근황도 들을 수 있었다. 누구는 자동차 딜러를 하고 누구는 음악을 공부하고 싶어 워킹홀리데이를 갔지만 일할 곳이 중국집 식당밖에 없었다는 얘기였다. 모두 H가 음악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상황이었다. H는 전공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것에 대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안타까워했다.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음악의 변두리에조차 남아있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을 거야. 우리도 그렇잖아.’ 말하고 싶었지만, 쉽사리 그럴 수 없었다. 잘 되겠지, 라는 상투적인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생각이 많아진다고 둘러댔다.

각자의 삶의 무게는 다르지만 뭔가를 지고 있다는 사실은 같았다. 원하든 원치 않든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이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나, 내가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 생각했다. 모두 예상치 못한 곳으로 가고 있음은 확실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