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통해 부처님의 뜻을 전하고 싶어요.” 시율 이채원 불화장인 인터뷰

2019. 12. 15. 12:33글쓰기 우당탕탕


분야에서 장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12월의 어느 날  불교의 내용과 종교적 이념을 표현한 그림인 '불화(佛畫)' 장인을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다. 이채원 불화장은 시율, ‘법을 베푼다는 뜻을 담은 호처럼 부처님의 그림을 전하는 것이 곧 법을 베푸는 것이니 그림을 통해 부처님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얇은 붓끝에 경건한 마음과 정성을 담아 그림을 그리는 불화장, 그의 작업실로 함께 가보자.



작업실, 공간이 말해주는 이야기

불화장의 작업실은 궁금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빼곡히 꽂혀있는 붓과 연필, 줄 서 있는 색색의 안료와 채색 도구가 보였다. 한쪽엔 선반 가득 올려져 있는 석채와 고운 빛깔을 내는 공작석과 청금석이 정갈하게 놓여있다. 손바닥 크기의 불화 몇 점과 온화하고 인자하게 맞이해주는 작은 불상은 손님을 반겨주는 듯했다.

분홍빛을 내는 돌은 석채로 쓰인다고 했다. 석채는 불화 채색을 위해 돌을 갈아 물에 섞어 말린 뒤 다시 가루를 내서 채색용 안료를 만드는 것이다. 돌을 갈아 색을 낸다는 점도 신기하지만 이렇게나 맑고 고운 빛깔을 낸다는 점 또한 놀랍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불화 두 점이었다. 성인 남성 키보다 커 보이는 커다란 불화에서 느껴지는 웅장함과 화려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옷의 질감과 화려한 장식이며 그림 속 나오는 인물의 각기 다른 표정과 수염, 손의 주름까지 세세하게 그려냈다. 불화장의 작업실은 모든 사물이 한 점의 그림처럼 어우러지는 모습이었다.


세화(歲畵), 자신의 해석을 덧붙여 완성한 그림 

불화장인이 그린 세화는 어떤 느낌일까세화(歲畵)란 조선 시대에 새해를 맞이하여 국왕이 질병과 재앙을 예방하고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뜻으로 신하와 백성들에게 내려주던 그림이다. 호랑이, , 해태, 수성, 선녀 등 여러 형태의 그림을 궐내에 그려서 나눠주었다고 한다.

불화장은 한국문화재재단과 함께 세화를 그리게 되어 영광이었다는 말로 본격적인 그림 이야기를 시작했다. 세화에 들어갈 인물은 조선 시대 궁궐 문을 지키는 책임자인 수문장이다. 불화장은 수문장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불화에서 다뤄오던 사대천왕(四大天王)과 수문장을 접목하기에 어려움도 있었다. 사대천왕은 옷이나 옷에 달린 장식, 화려한 자세만으로도 위엄 있는 표현이 가능했지만, 수문장의 의복은 얇고 나풀거리는 비단이기 때문이다.

수문장은 사대천왕과 의복도 다르고 몸에 두르거나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많아서 거추장스러워질까 봐 어려움이 있었어요. 수문장의 옷은 비단이었기 때문에 이 옷으로 사대천왕의 위엄을 표현하기가 쉽진 않았거든요. 위엄있으면서도 너무 무섭게 그리면 거부감이 있을까 봐 해학적인 느낌도 약간 가미했다고 할 수 있죠.”

수문장은 제가 원래 그리던 불화의 사대천왕과 의복이 다를 뿐, 그리는 과정 기법, 재료는 모두 불화와 동일해요. 얼굴 그리는 것과 옷 채색, 바림(연한 색과 진한 색을 연결하여 부드러운 효과를 내는 기법), 선을 그리는 것까지 불화의 기법으로 그렸습니다. (밑그림 그리기)를 낼 때 고충이 있었지만, 수문장이라는 주제를 제 나름대로 해석해서 그려봤습니다. 어려웠던 만큼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다소 무섭게 느껴질 수 있는 사대천왕의 모습보다는 온화하고 인자하지만, 궁궐의 문을 지키는 책임자인 만큼 권위 있고 근엄한 모습은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 그림이었다. 고민의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것 같았다. 불화장은 운문 채색 또한 직접 보여주었다.

세밀한 선과 채색을 위해 사용하는 가느다란 붓 두 자루를 들고 구름에 색을 입힌다. 장인의 손끝을 거친 그림은 순식간에 생명력을 얻어 생동감 있는 모습으로 변했다.

 

색을 올리듯 마음을 하나씩 올려서

불화장이 앞서 선보인 그림은 석채를 써서 색을 내기 때문에 한 번에 색을 낼 수 없다. 화학 안료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불화장은 채색을 칠한다가 아닌 올린다고 표현했다. 색을 올리고 건조한 뒤에 또 올리고 그렇게 색감을 표현해야지만 깊은 색을 낼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장인에게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림을 그리는지를 물었다.

불화를 그릴 때는 그림을 잘 그려야 된다는 마음보다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화는 선으로 시작해서 선으로 끝납니다. 처음 선을 그릴 때와 채색이 들어가고 선을 그릴 때,네 번 정도 같은 선을 반복해서 그린 뒤, 마무리 개안을 할 때까지 참을 인자를 새겨가며 그림을 완성해갑니다.”

처음 밑그림을 그릴 때부터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눈동자를 그려 넣는 의식인 개안(開眼)까지 경건한 마음으로 임한다는 장인의 답변에서 진지함을 볼 수 있었다. 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기본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 또한 확인할 수 있던 순간이었다.

 오방색이 너무 두드러져 거부반응을 갖게 하는 기존의 것과는 다르게 따스하고 부드러운 색감을 쓰려고 합니다. 대중에게 친근감 있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불화를 그리고 싶어요. 불교가 정체되고 쇠퇴하고 있는 요즘, 제가 그린 불화를 통해 불교문화를 나누고 알리고 싶습니다.”

불화장은 다시 한번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불화를 전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종이 위에 선과 색을 올리듯 마음을 온전히 담아내는 그림이라면, 장인의 뜻처럼 누구에게도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장인의 믿음처럼 정성스러운 그림에 담긴 뜻이 많은 이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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