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에 숨 막히긴 싫으니까
사직동에 있는 ‘사직동, 그 가게’에 갔다. 인도풍의 노래가 흐르고, 티베트 문화를 소개하는 사진과 문구가 가득한 곳에. 가게 내부엔 알록달록한 천이 여기저기 걸려있고 흰 부채에 티베트 속담이 적혀있었다. ‘아홉 번 실패한 사람은 아홉 번 노력한 사람이다’ 한순간 분위기에 취해버렸다. 이런 곳을 만나면 마음이 울렁거려 참을 수가 없다. 아, 나도 뭔가를 하고 싶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서울에서가 아니라 직접 그곳을 내 두 눈으로 보고 내 두 다리로 걸어보고 싶다. 그곳에 냄새를 맡고 그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고 속으로 외친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나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가게 옆에는 티베트 옷이나 액세서리 등을 파는 공간이 따로 있었다. 사고 싶은 물건들이 많았다. 앞치마도 사고 싶고 잘 안 하지만 목걸이에도 눈이 갔다. 따뜻해 보이는 상의도. 밑에 주렁주렁 털이 달린 망토처럼 생긴 후드였는데 예뻐 보였다. 사고 나면 분명 후회할 게 뻔했지만, 그 순간 정말 지갑을 열 뻔했다. 알고 보니 그 가게는 티베트 난민구호 단체인 ‘록빠(Rogpa)’였다. ‘친구’ ‘돕는 이’라는 뜻이며 수익금으로 티베트 여성들, 난민들을 돕는다고 했다.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다니. 가슴이 마구 뛰었다.
짜이와 야채 커리, 오! 도사 탈리를 주문했다. 아주 좋은 조합이었다. 맛있었다. 가지, 연근, 버섯, 파프리카 등이 들어간 커리에 밥을 쓱싹쓱싹 비벼 먹으니 꿀맛이었다. ‘수카라’에서 먹은 커리만큼 맛있었다. 내 인생에 손꼽히는 커리집 중 한 곳인데, 거기와 비슷한 거라면 정말 맛있는 거다. 오! 도사탈리는 처음이었다. ‘도사’는 발효 쌀과 검은 렌틸콩 반죽을 크레프처럼 넓고 얇게 부친 인도의 빵이며 ‘탈리’는 큰 접시에 여러 음식을 담아 먹는 인도의 식사법을 말한다. 이때 사용되는 접시를 가리키기도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인도의 빵인 도사를 소스와 스튜를 곁들어 먹는 요리다. 항상 느끼는 거였지만 인도 음식은 향신료 때문에 향이 강해도 간이 세지 않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었다. 진짜 인도에서도 그런지 궁금하지만. 아, 다시 인도 병이 생기기 시작했다. 든든히 밥을 먹고 짜이를 마셨다. 오늘 날씨에 딱 맞았다. 비와 우박이 내리다 그쳐 쌀쌀한 바람이 불었으니까. 게다가 목이 칼칼하고 으슬으슬 추운 게 뜨끈한 걸 계속 마시고 싶었던 터라 더욱더 맛있었다. 기분이 좋아져 몸을 들썩거리며 리듬을 탔다.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티베트의 속담이란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겠지. 가게로 들어가는 문 바로 옆에 걸어놓은 작은 칠판에 적혀있는 문구였다. 진짜로 그 가게에 들어간 순간엔 어떤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악을 들으며 몸을 흔들고 나니 밥그릇은 싹 비어 있었고 짜이 한 잔을 꿀꺽했을 뿐이다. 순식간에 돈을 쓰긴 했지만. 그래도 정말 좋았다. 다음엔 한낮에 새가 두드리던 그 문 앞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 그래야겠다. 다시 한 번 찾아가야겠다. 그땐 다른 짜이를 먹어봐야지. 가게를 나와 울렁거리는 마음을 채우려 걸었다. 홀린 듯이 인도 물품을 파는 가게에 들어갔다. 그동안 사고 싶었던 향 피울 수 있는 스틱을 사고 싶어서였다. ‘NAG CHAMPA’라고 적힌 네모난 상자를 들어 냄새를 맡았다. 그래! 이거야! 이 향이다!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5,000원을 주고 15g 스틱 한 상자를 샀다. 분명 인터넷에선 더 싸게 살 수 있을 텐데. 그래도 당장 오늘 밤부터 피울 수 있는 게 어딘가. 상자에서 은은하게 피어나는 향이 벌써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그렇지. 걱정한다고 뭐든 게 다 해결되는 건 아니지. 향과 더불어 속담이 계속 생각났다. 어제 온종일 침울했던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상자를 들고 있던 손가락에도 향이 배어있었다. 걱정도 그런 게 아닐까. 나도 모르게 수없이 불어나 종잡을 수 없는 것. 나도 모르는 내 몸 구석구석 배어버리는 것. 집에 돌아와 향을 피웠다. 받침대는 마음에 드는 게 없어 사지 않고 다 말라버린 스투키를 뽑아낸 빈 화분에 꽂았다. 방 안에 온통 향이 퍼졌다. 책상 위에 두니 숨이 막힐 정도로 강했다. 캑캑 대며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가 껐다. 이 정도만 피워도 충분했다. 주황색 불이 타들어 가면서 하얗게 피워내는 연기를 보며 생각했다. 가슴 뛰게 살자. 걱정을 너무 많이 피워내진 말자. 걱정보단 희망으로 가득 채워야 함을 잊지 말자. 걱정에 숨 막히며 살진 말자.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