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요즘 허리가 아프다. 왼쪽 허리가 뻐근하고 시큰한 게 불편하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머리를 굴려보지만 얼마 안 된 것 같다. 일주일 정도 됐을까? 최근 글을 쓰겠다고 방 책상에, 카페에 오래 앉아있어서 그런 것 같다. 노트북을 들고 다니기 시작해서 그럴 수도 있고. 이유는 뭔지 모르겠다. 집에 있는 안티푸라민 로션을 자꾸 바르게 된다. 파스는 다 써서 없는 로션으로. 엄마도 바르고 할머니도 바르는데 이젠 나까지 바른다. 오늘도 카페에 갔다. 집에 있으니 집중이 안 돼서. 어제 1시 반 정도에 잠들어서 9시 반에 한 번 깨고, 30분만 더 잔다는 게 12시에 일어났다. 주말 아침은 늦잠이지 싶다가도 몸도 쳐지고 기분도 처질 것 같아 집을 나왔다. 점심을 먹으니 또 밀려오는 졸음을 물리치고 페퍼민트 차를 한 잔 내려 텀블러에 담고 노트북과 수첩, 필통을 챙겨 나왔다.
오늘의 카페는 프릳츠다. 예전보다 규모가 더 커졌는지 한쪽 벽에 상품을 진열해 놓았다. 노트, 유리컵, 커피잔, 앞치마, 모자, 핸드폰 케이스까지 다양했다. 커피를 들고 있는 물개가 귀엽다는 생각은 해봤지만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사람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주방은 바쁘고, 근데 또 사람은 밀려들어 오는 그런 카페였다. 이렇게 복잡할 줄 알았으면 오지 말걸. 후회했다. 주방 뒤쪽, 한 명씩 앉을 수 있는 바 형태인 테이블에 자리를 맡아 놓고 주문을 했다. 윈터 티 아이스로. 프릳츠에서 만들어 낸 차 같았다. 히비스커스에 계피인지 생강인지 깊은 향이 나 독특했다. 차갑게 주문하니 탄산수를 좀 섞어 준 것 같았다. 맛은 없었다. 차를 들고 다시 돌아간 내 옆자리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어디서 봤더라. 머리를 굴렸다. 아, 중학교 동창! 하얀 피부와 투박하게 생긴 코가 특징이었다. 길게 뻗은 코가 중간에 한 번 튀어나왔다 다시 들어간 모양이라 인상적이었다. 긴 생머리에 앞머리를 고수하던 예쁘장한 이미지가 금방 과거를 떠올렸다. 지금도 똑같았다. 생머리에서 파마했다는 것만 빼면. 중학교 졸업 이후 연락한 번 한적 없고 동창회를 나간 적도 없으니 소식을 들을 리도 없었다. 그때 이후로 처음 본 거였다. 딱히 친하지도 않았으니 말을 붙일 필요도 못 느꼈다.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고. 게다가 동창은 친구와 함께 온 거였다.
내게 등을 돌리고 친구와 이야기했다. 가뜩이나 좁은 테이블에, 주문 번호 1번 손님, 하고 외치는 직원의 목소리에, 커피를 내리고 접시를 닦는 소음에, 사람들의 대화 소리에 파묻혀있던 터라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남자 이야기가 확실했다. 같이 온 친구와 동창은 남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얼마 전 솔로가 되었다며 볼멘소리로 말하는 동창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페 내부는 조명도 어두워 불편했다. 카페 소음은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데 여긴 아니었다. 적어도 글쓰기 좋은 곳은 아니다. 계속 주변을 둘러보며 남는 자리가 없나 둘러봤다. 써야 할 글을 시작하지 못하고 자리를 옮겼다. 잠시 뒤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니 동창과 친구는 사라졌다. 사람 인연이라는 게 참 쉽고도 어렵구나, 느꼈다. 거의 10년 만에 우연히 카페에서 만난 거였는데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고 서로 할 일을 했다. 예전 그 기억 그대로 남겨두는 걸 택한 셈이었다. 동창은 중학교 때 친구 관계가 원만해 보였다. 오늘도 그랬다. 친구와 같이 있는 모습을 보니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개가 어떻게 됐다더라, 하는 안 좋은 소문을 듣는 것보단 훨씬 나은 일이니까. 인연은 이렇게도 만날 수 있는 거였다. 약속하지 않아도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짠, 하고 만날 수도 있는 거였다.
두 시간이 지났다. 허리가 욱신거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카페를 나왔다. 허리엔 걷기 운동이 좋다니까 산책을 했다. 스쳐 지나간 인연들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붙잡았다면 계속 이어질 관계였을지. 난 너무 많은 관계를 놓아버린 건 아닌지에 대해서. 확실한 건 사람 일은 재밌게도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거다. 거기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거다.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도, 만들어가는 것도 모두 내 몫이었다. 다음 이야기는 무엇일까. 내가 무슨 이야기를 만들어갈까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