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자취) 방
버지니아 울프는 글을 쓰기 위해선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현시대엔 빠진 단어가 있는 것 같다. 자기만의 (자취) 방. 방에 아무리 틀어박혀 있어도 혼자인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없을 때가 있다. 그것도 자주. 집 전화와 가족들의 핸드폰 전화벨 소리에 아침잠을 깰 때가 다반사고 대화 소리에 깜짝 놀란다. 점심을 먹을 즈음엔 잠긴 현관문을 여는 덜컥덜컥 소리가 들릴 때면 밖에 할아버지가 서 계신다. 어쩔 땐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삐비비빅 소리가 날 때도 있다. 두세 번 이상 틀리면 그때도 할아버지다. 손님처럼 느껴지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점심을 먹어야 할 때, 상당한 피로감을 느낀다. 혼자서 조용히 맞는 식사가 그리워진다.
5인분의 설거지를 해야 할 때도 그렇다. 뒤처리는 다 같이 해야 하는 거라고 그렇게 말해도 설거지를 할 줄 모르는 가족들. 시키지 않으면 하지 않는 태도에 화가 나고 분통이 터져도 내가 안 하면 엄마의 차지가 되니 안 할 수가 없다. 그럴 때면 빨리 나 혼자 있는 공간으로 가고 싶어진다. 그래서 문을 닫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빗장을 걸어 잠그고 싶다.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고 찾지 않는 곳에서. 더욱 자기만의 자취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글을 쓰기에도, 나를 돌보기에도. 가족들과 같이 오래 있으면 감정 낭비가 심해진다. 허튼 곳에 감정을 소모하니 화나지 않는 다른 감정들엔 무덤덤해진다.
기뻐야 할 때 기쁘고, 축하해야 할 때 축하해야 하는데, 그냥 그렇다. 다른 곳에 감정을 너무 써버려서 탈진상태다. 슬프지도 않다. 짜증 난다, 화난다는 감정이 들 때만 내가 반응하는 느낌이다. 감정에도 잔상이 남아서 기뻐도 슬퍼도 짜증나도 화가 나도 그 느낌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오늘도 그랬다. 이번엔 진짜 나만의 공간을 찾아야 할 때다. 할머니가 안정기를 찾는 대로 나만의 방을 구할 거다. 진짜 내 삶을 사는 기분을 빨리 느끼고 싶다. 내 시간을 내가 보낸다는 느낌을. 어서 빨리. 허튼 곳에 감정을 낭비하는 일도 없고 당분간은 무탈하게 지내고 싶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