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누군가가 대신 노를 저어줬으면 좋겠어
향수를 뿌렸다. 기분 전환이 필요해서다. 서랍엔 얼마나 됐는지 모를 정도로 오래된 향수가 하나 있었다. 문득 나에게도 좋은 향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어 들었다. 칙칙. 허공에 뿌리고 그 아래에 빙그르르 돌기를 두 번. 그제나 지금이나 취향은 비슷한지 진한 장미 향을 맡으니 좀 나았다. 기분의 결이 좀 달라진 느낌이었다. 피곤해서 누워있던 한 시간 전의 분위기와는 확실히 달랐다. 옷장에서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었다. 봄을 실감하는 중이었다. 얇아진 외투에 장미 향까지 은은하게 풍기니 걸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미세먼지만 나쁘지 않았다면 훨씬 좋았을 테지만.
B를 만났다. 무성의한 옷차림에 기분이 상했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갑자기 눈물이 터져 버린 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나 조울증 인가 봐, 농담을 건넸다. 그러던 중 눈물이 쏟아졌다. 휴지로 눈을 꾹 눌렀다. 옅은 갈색 휴지 위에 내 눈물이 진하게 자국을 만들었다. B가 휴지를 더 갖다 주었다. 나는 나, 힘들어. 속내를 말해버렸다. 나도 모르던 내 마음이었다. B는 지금 행복하지 않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행복했냐고 묻자 모르겠다고 답했다. 제주에 갔을 때 행복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이번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네가 행복한 곳에서 살아. 거기에서 살면 되지. 그럼 되는 거지.
배를 타는 상상을 했다. 거대한 바다 위에 나 혼자 타고 있는 조각배가 어디론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곳으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가늠이 잘 안 갔다. 상상 속 나는 손으로 물살을 확인한다. 배가 나아가는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다. 이제 노를 저어 물살을 가를 거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한 번, 두 번 팔을 저어 볼 거다. 그러니 지금은 준비할 시간. 힘을 기르고 방향을 정할 시간. 눈물을 멈춘다. 젖은 휴지를 뭉쳐 손으로 꾹꾹 누른다. 슬픔과 불행과 걱정이 작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