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되겠네
영상 편집 수업 첫날. 오전 7시 40분에 맞춰 놓은 알람은 주말엔 울리지 않았다. 아차. 주중으로만 맞춰놨구나. 8시 12분에 일어나 부랴부랴 준비하고 학원에 도착했다. 개강 첫날엔 복잡하니 9시까지 오라던 안내와 다르게 학원은 한산했다. 게다가 선생님까지 지각이다. 부랴부랴 강의실에 도착한 선생님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출석을 불렀다. 그다음엔 쪽지를 한 장씩 돌렸다. 간단한 본인 소개와 이 강의를 들으려는 이유를 쓰라고 했다. 나는 ‘영상 편집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유튜브 도전’이라고 적었다. 유튜브 도전. 적을까 말까 고민했지만, 나랑 비슷한 사람이 몇 명 더 있었는지 선생님은 쪽지를 들춰보며 유튜브 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많네요, 라고 말했다. 그리곤「프리미어 프로&애프터 이펙트 CC 무작정 따라 하기」라는 두꺼운 책을 나눠주며 말했다. 이 책 너무 두꺼우니까 가져오실 필요 없고요. 제가 설명하는 거 따라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시작했다. 7시간 동안의 강의가.
책 제목처럼 무작정 따라 했다. 점심을 먹은 40분과 공식적인 10분의 쉬는 시간을 제외하면 모니터에 빨려 들어갈 기세로 뭔가를 했다. 영상 밖에서 안으로 강아지 사진을 움직여 봤다가 선물을 뿅 하고 나타나게 했다가. 사진이나 그림의 테두리 모양대로 선을 따는 작업(일명 누끼)을 하고 갑자기 스틸 컷 몇 장으로 영화 예고편을 만들었다. 이게 다 뭔가요, 선생님. 머릿속엔 혼돈의 바람이 휘몰아쳤다. 한꺼번에 다양한 지식을 머리에 넣으려 하니 들어가질 않았다. 잘 돌아가지도 않고. 무엇보다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뭔가를 계속해야 하는 게 미칠 것 같았다. 좀이 쑤셔서 혼났다. 수업이 끝나자 파김치가 됐다. 영상은 원래 이렇게 어려운건가. 흥미가 뚝뚝 떨어졌다. 다 배우고 나면 정말 도움이 될까. 의심도 들었다.
파이널 컷 프로를 이것저것 만져본 적이 있어서 이것도 비슷하겠거니 했는데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내일 배움 카드를 발급받아 듣는 수업이라 쉽사리 취소할 수 없었다. 온종일 모니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도 못 하겠고 머리는 멍해지고 어깨는 뻐근했다. 집으로 돌아와도 똑같았다. 티브이는 바보상자라잖아요. 영상 편집은 보는 사람들이 알기 쉽게끔 해줘야 해요.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아뇨, 선생님. 제가 바보가 된 것 같은데요. 예전엔 티브이가 바보상자였다면 요즘은 인터넷과 유튜브가 아닐까. 너무 오래 보니 머리가 굳는 느낌이다. 요즘 따라 그렇다. 사고가 멈추고 기억력도 나빠지는 것 같다. 유튜버고 뭐고 바보가 먼저 되겠다. 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