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기 12. 안녕하세요, 육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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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선 이상한 시선을 받는다. 삼 일 묵었던 종달리나 이곳 김녕은 시골이라 그런지 마을 사람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차에 타거나 길을 걸을 때 마주친 노인들은 대부분 나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왜 여기까지 왔는가? 여기 뭐 볼 게 있다고? 라고 눈으로 말한다. 내가 멀어지면 고개가 돌아갈 정도로 시선을 떼지 않고 쳐다보는 것이 처음엔 재밌었다. 젊은 사람도 없고 딱 봐도 이곳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일 테니 그러려니 했다.
김녕 해변을 가기 위해 걸어가던 중이었다. 내 앞쪽으로 할머니 한 분이 쓰레기봉투를 하나 쥐고 걸어가고 있었다. 반팔과 칠부 바지에 드러난 피부가 검었고 숱 없이 하나로 질끈 묶은 검은 머리에 흰 것이 군데군데 보였다.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빨갛게 충혈된 눈과 고르지 않은 치열이 눈에 띄었다. 계속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자 다시 뒤를 돌아 나에게 말을 붙였다. 치열 때문인지 잘 못알아 들었지만, 해변 쪽으로 가느냐고 묻는 것 같아 예, 대답했다.
“저쪽으로 가, 저쪽.”
손을 훠이 훠이 저으며 말하는 모습을 바라보다 예예,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다. 저쪽으로 가는 게 맞는지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할 말을 다 했는지 두 세 걸음 걸어가던 할머니는 다시 또 “저쪽으로 가라고, 저쪽…” 하며 손을 휘젓고 앞서 걸어갔다. 마주친 붉은 눈이 자기 쪽으로 오지 말라고 위협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대답했다. 고개까지 꾸벅 숙였다. 나를 불편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사실 굳이 돌아가라 하지 않아도 될 길이었다.
나는 육지 사람이다. 같은 한국 사람인데 이곳에서 노인들이 주고받는 얘기를 잘 못 알아듣는다. 제주 방언을 모르는 육지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에겐 나는 낯선 이방인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이 아름다워 온 것이고 오름을 오르며 자연이 빚어낸 작품을 보기 위해 온 것이다.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느끼러 온 이곳에서 나는 언제까지나 이방인이겠지. 사랑해 마지않는 이곳에서 산다 한들 의심의 눈초리를 씻을 순 없을 거다. 아마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그래도 좋다. 선한 눈빛을 보여준 이들을 생각하자. 내가 먼저 안녕하세요, 인사하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하며 받아주던 이와 마트에서 두 손 가득 장을 보고 무거워서 길가에 잠시 쉬는 도중 어디서 사는 거냐고 먼저 묻던 이를. 반가운 눈. 먹구름 사라지듯 의심을 거두고 반짝거리는 눈을 생각하자.
이 모든 생각도 저녁을 보며 바라본 하늘을 보니 모두 사라진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육지 사람은 저 주홍빛 하늘만 봐도 좋다. 일단 오늘은 이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