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끝났다
여름이 끝난 걸 제일 먼저 알 수 있는 건 종아리다. 유난히 다리 피부가 건조한 나는 종아리에 일어난 각질을 보면 여름이 끝났다는 걸 실감한다. 바지를 벗을 때나 손으로 종아리를 쓸어내릴 때 각질이 폴폴, 눈 내리듯이 휘날리면 느낄 수 있다. 건조함의 계절이 시작됐구나. 로션이나 바셀린 따위를 발라주지 않고는 못 배길 날이 다가왔구나. 얼굴은 옆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당기고 손등도 하얗게 일어나기 시작하니, 제대로 느끼는 거다. 여름이 지나갔다는 걸. 내 방 창문 두 개를 가리고 있던 하얀 색 커튼을 뗐다. 꽃문양으로 구멍이 뚫려 시원해 보이는 레이스 커튼이었다. 조금 더 두꺼운 것으로 달려고 옷장에서 연한 갈색 커튼을 꺼내 고리를 달아 놨다. 한쪽 창문에만 갈색 커튼을 달아놓고 힘이 들어 그대로 두었다. 아무래도 고리 수를 잘못 세서 모양이 이상했다. 내일, 더 두꺼운 커튼이 있나 동네 가게를 가보기로 했다. 나는 유난히 추위에 약한데, 내 방은 유난히 춥기 때문이다.
햇빛에 말려두었던 옷 정리를 했다. 민소매와 반바지, 반소매 티셔츠가 대부분 이었다. 다시 입으려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할 터였다. 일주일 전만 해도 제주도에서 민소매를 입고 다녔었는데, 날씨는 금세 변했다. 한낮에는 여름을 흉내 내는 더위가 찾아오고 아침저녁으론 찬 기운이 자리 잡았다. 한낮의 더위가 점점 누그러지고 쌀쌀한 온도와 이따금 부는 바람이 조금씩 미리 찾아오면 가을, 늦가을, 겨울이 되겠지.
아, 이젠 추위를 이겨내는 일만 남았다.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의 기억들로 견뎌야겠다. 다시, 여름이 시작됐다고 쓰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