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하루한편

우리는 각자 연습 중

담차 2018. 10. 21. 23:32


 

이해받지 못한다는 답답함 때문이었다. 엄마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싸운 건 아니었다. 그렇게 느끼는 엄마의 상황을 너무 잘 알아서 더 속상했다.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상황이 있고, 나도 내 나름의 일이 있었다. 잘잘못을 따질 문제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의 모든 건 콕 집어서 판단할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이것도 그중 하나일 뿐이고. 답답한 마음을 풀러 밖으로 나왔다.

  서울 자전거 따릉이두 시간 이용권을 구매했다. 기분이 우울해 바람이라도 좀 쐐야 살 것 같았다. 따릉이 대여소까지 걸어가 우여곡절 끝에 빌렸다. 몇 번 빌린 적이 있었는데도 오랜만에 하려니 헷갈렸다. 오늘은 도저히 따릉이를 포기할 수 없어서 자전거 근처에 쭈그려 앉아 사용법을 핸드폰으로 찾아봤다. 안장에 올랐다. 몇 번 비틀거리다 금방 중심을 잡았다. 앞으로, 앞으로 계속 달렸다. 온몸의 중심만 생각하다가 좌우를 둘러봤다. 사람들, 주변 건물들, 그리고 나무를 봤다. 단풍나무들이 빨강 주황 노랑을 섞어 서 있었다. 벌써 잎이 떨어지기도 했다.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니 기분이 좋았다. 하얀 뭉게구름이 박힌 하늘을 봤다. 페달에 올린 발로 열심히 원을 그렸다. 달리다 보니 경의선 책거리까지 갔다. 출출해져서 편의점에 들러 간식거리를 샀다. 나무 귀퉁이에 자전거를 주차해 놓고 바로 앞 기다란 벤치에 앉아 먹었다. 잠시 쉬니 다시 달리고 싶었다. 다시 바퀴를 굴렸다. 계속 달렸다.

  

  네발자전거를 타는 어린이가 눈에 띄었다. 뒤에선 아빠가 밀어주고 있었다. 나도 어릴 때 저렇게 자전거를 배웠는데. 보조 바퀴 두 개가 있으니 웬만해서 넘어지지 않는다는 건 크고 나서야 알았다. 그때는 내가 정말 잘 타는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니 난 이제 두발자전거를 탄다. 보조 바퀴는 필요 없어졌다. 손바닥만 한 작은 원 두 개가 사라진 만큼 중심 잡는 건 더 중요해졌다. 이제 나 혼자 중심을 잡아야했다. 내 등 뒤에서 내가 넘어지나 지켜봐 주는 사람도 없고 설 때와 달릴 때를 구분하는 건 오로지 내 몫이었다.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잡고, 기어를 변경해 길에 따라 잘 달릴 방법을 선택하는 것도. 하지만 이 모든 건 중심 잡기부터 연습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균형 감각도 중요하다. 오른쪽으로 몸이 쏠리면 재빨리 왼쪽으로 무게를 실어 적당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눈은 좌우를 둘러 상황을 살펴야 하고 발은 계속 원을 그리며 움직여야 한다. 두 팔로 양 손잡이를 잡고 브레이크와 기어를 조절하고, 벨도 울려야 한다. 사지를 동시에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는 거다. 그렇게 타다 보면 어느샌가 몸이 익숙해진다. 평지에선 꼭 발을 움직여 페달을 밟지 않아도 천천히 굴러간다는 걸 깨닫게 되고, 내리막길에선 브레이크를, 오르막길에선 변속을 해 조금 더 쉽게 가는 법을 알게 된다.

  삶에서도 균형이 중요하다. 중심을 잡는 건 더더욱. 어려우니 오래 걸린다. 처음 자전거를 탈 때처럼 중심을 잡는 게 먼저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겠다, 생각하는 게 먼저라는 거다. 절대 쉽지 않다. 수많은 타인의 시선 때문에 휘청이고 길 한가운데 뱉어놓은 편견을 만나 걸려 넘어질 수도 있다. 우스운 건 그 일은 처음 만난 사람, 적당히 아는 사람과 일어날 때 보다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벌어진다. 그럼 난 넘어진다. 상처가 나고 통증이 있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그럼 균형을 잡지 못한다. 잠깐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계속 달리게 된다. 어려운 길, 쉬운 길은 어떻게 가야 더 편한지, 좋은지 모른다. 그러니 계속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 중심 잡기를.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맑은 하늘과 길가에 심어진 나무를, 그 옆에 자라난 꽃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풀 사이에서 밥 먹는 고양이도 볼 수 있고. 예상치 못한 기쁨이 널려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러니 계속할 뿐이다. 이왕이면 넘어지지 않게. 넘어지더라도 빨리 낫는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 다시 달릴 수 있게. 중심을 잡는 거다. 그러면 알게 된다. 이상한 것투성이인 이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중심 잡기 중이라고. 그래서 부딪히고 서로 상처를 주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