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쓰세요."

2019. 1. 28. 23:59이제는 여행작가

 

오후 3시가 넘은 시간.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자취할 집을 열심히 찾아보던 중이었다. 두피디아인데요, ㅇㅇㅇ님 맞으시죠? 네네. 오늘 계약하기로 하셨는데 안 오시나요. ? 내일 아니었나요? 오늘인데요. 으악! 최근 두피디아 여행 작가에 신청했다. 그리고 계약하자는 반가운 답변을 들어 계약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내가 날짜를 착각한 거다. 내일 3시인 줄 알았는데 오늘이었다. 난 죄송하다고 사과를 한 뒤 4시 반까지 가도 되는지 묻고 헐레벌떡 준비한 뒤 지하철을 타러 갔다. 이럴 수가. 정신이 나가 있었구나. 왜 날짜를 잘못 봤지. 일로는 철두철미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기본적인 실수를 하다니 내가 나에게 놀랐다.

사무실에 도착했다. 담당자분과 인사를 나눴다. 지금은 계약을 진행할 회의실에서 회의가 있으니 다른 곳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뒤 계약을 진행했다. 담당자분은 나에게 여행을 많이 다녀오셨더라고요, 운을 뗐다. 나는 그런가요. 대답하고 웃었다. 난 내가 여행을 많이 다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역시 어떤 기준은 모두 다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계약서를 천천히 읽어봤다. 사인하고 잠시 얘기를 한 뒤 사무실을 나섰다. 두산백과 건물도 직접 보고 신기했다. 무엇보다 내가 작가님이라고 불린다는 것이. 아직은 너무 어색한 호칭이다.


(여행작가님? 여행작가님!)

얼떨떨한 기분으로 방산시장을 찾았다. 책 포장지를 사기 위해서다. 크라프트지를 눈으로 열심히 찾았다. 도배지, 상자, 비닐 포장지, 음식을 담을 포장 용품 등 물건이 다양했다. 첫 번째로 들어간 곳에선 굵은 롤 단위로 파는 크라프트지가 보였다. 이거 얼마에요? 물으니 구천 원이라고 했다. 요거에 반 절짜리는 없냐고 물으니 여기엔 적게는 안 판다고 했다. 다른 가게에 갔다. 가게 밖에 크라프트지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여기라면 왠지 낱장도 구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밖에 있는 종이요, 한 네 장만 살 수 있을까요? 사장님은 크라프트지는 20장이 기본이라고 했다. 한 장이 전지 크기만큼 커서 사장님이 8등분을 해주겠다고 했다. , 그렇게 주세요. 그럼 160장이었다. 내 책 포장으로 이걸 다 쓸 일이 있을까선물도 많이 하며 살지 뭐.

커다란 칼날이 달린 기계가 위에서 아래로 턱, 턱 종이를 잘랐다. 처음 보는 기계였다. 160장을 두 번 겹쳐 말아 고무줄로 묶고 비닐봉지에 담아주시며 사장님은 말했다.

잘 쓰세요.”

흔한 인사가 왠지 글을 잘 쓰라는 것처럼 들렸다. , 감사합니다. 인사를 한 뒤 가게를 나왔다. 잘 쓸게요. 포장지로도 잘 쓰고. 글도 잘 쓰고.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나에게 선물의 의미로 떡볶이를 사줬다. 그리곤 생각했다. , 이제 시작이다. 여행기 쓰기 시작. 잘 써야겠다. 잘 쓰라는 사장님의 응원도 들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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