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기 05-1. 당신 정말 하고 싶은 것만 하셨네요

2018. 8. 24. 23:39여행을 기록하자/제주도 한달살기

[05-1]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반 정도 읽고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갔다. 김영갑 선생의 글을 읽다가 살아 움직이는 영상을 보니 이상했다. 목소리를 듣고 말 할 때 짓는 표정도 봤다. 사진 찍는 모습도 보고 생전에 사용했던 서재도 직접 봤다. 90년대의 제주와 누구보다 제주를 사랑하는 당신의 지독함을 봤다.
짙은 눈썹에 주름진 미간, 책에서 본 것처럼 직접 감물 들여 입었다는 옷과 커튼을 만드는 모습. 웃는 사진은 하나밖에 찾을 수 없었다. 루게릭병에 걸려 몸에 힘이 없는데도 무릎을 꿇고 찍은 사진을 확인하는 모습. 야윈 탓인지 새는 발음으로 스스로 부족하다고 말하는 당신.
온통 사진 생각에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다른 곳엔 없는 편안함을 준다는 제주가 지독한 사랑의 이유였다. 당신이 남긴 사진을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안타깝고, 감사했다.

당신의 시신은 그곳 감나무 밑에 뿌려졌다. 갤러리 뒷마당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보니 어딘가에 뿌려져 고이 잠들었을 당신을 생각했다. 바람처럼 떠돌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다가 갔다. 아름다운 제주를 남기고 갔으니 그저 사진을 눈과 마음에 담을 뿐이다. 20년 전 나는 너무 어려 당신과 우연히라도 만날 수 없었지만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먹는 상상을 했다. 20년 동안 제주를 떠돌며 오로지 사진 생각만 했던 당신. 나는 당신의 지독한 고집스러움을 존경한다.​


전시를 다 보고 당신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용눈이 오름에 올랐다. 이곳을 사시사철 밤낮없이 제집처럼 드나 들었을 당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눈에 다 담기지 않는 오름을 몇 번이고 찍었겠지. 카메라로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한 모습을 당신은 끝까지 붙잡고 늘어졌다. 용눈이 오름 먼발치에 카메라 삼각대를 설치하고 기다리던 당신이 보였다. 투병 전이라 보기 좋게 살이 올라있던 모습이었다. 아직도 사람들 없는 어딘가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 것만 같다.
당신을 생각하며 오름을 한 번 더 올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