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기 06. 나 자신의 비전문가

2018. 8. 25. 23:43여행을 기록하자/제주도 한달살기

[06]
소심한 책방-순희 밥상-달빛 서림 책방-사려니 숲길-김녕

게스트하우스 퇴실 후 소심한 책방에 들렀다. 소심한 책방은 읽고 싶은 책들이 가득한 곳이다. 두 번째 방문이었지만 아직도 궁금한 책들이 많은 곳. 돌담과 어우러진 그곳에 책방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책섬>의 작가 김한민의 다른 책 <비수기의 전문가들>을 읽었다. <비수기의 전문가들>은 왜 사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책이다. 단순히 설명하자면 그렇지만 사실은 굉장히 심오하고 질문이 많아지는 책이다.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포르투갈로 떠나는 이의 내용이다. 여행 중에 읽으니 느낌이 새롭다. 기록하고 싶은 글들이 많았지만, 오늘은 짧은 것으로 대신한다.


살던 데서 살면, 그냥 살면 되지만 떠나기 위해선 그 이상이 필요하다. 한 푼 쓸 때마다 자문하게 된다. 여기서 이게 무슨 짓이냐…. 본능적으로라도 의미를 찾게 된다. "여긴 왜 왔나?" "왜 이렇게 멀리까지 왔나?" 흔하디흔한 질문도 정곡을 찌르는 지적이 된다.

그럼 나는 왜 이곳에 왔나, 왜 이렇게 가깝고도 먼 곳으로 왔나 생각해봤다. 회사를 정리하고 숙소와 가고 싶은 곳을 찾아보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내 안에 일어난 바람과 같은 무언가에 쫓겼다. 돈과 시간을 들여 제주를 찾았다. 무엇을 얻고 싶어 왔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아니면 이곳에 내 안에 있는 걸 내려놓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불안과 고민과 걱정을.
지금은 자연이 내 안에 깊이 들어와 줬음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충만한 자연을 느끼고 싶다. 다시 그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게. 제주에 세 번째 왔지만, 아직도 제주에 대해선 비전문가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나에 대해서도 그렇고 삶에 대해서도 그렇다. 삶에 대해선 영원히 비전문가이겠지만 나 만큼은 조금 알고 돌아가고 싶다. 나 자신 만큼은. 자연에 대해 알게 되면 나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 그래서 이곳으로 찾아 왔나 보다.

순희 밥상에서 밥을 먹고 사려니숲길로 갔다. 날이 흐려 비가 오락가락해서 숲길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차를 타고 가는 길에 걷고 싶은 곳에 내려서 동네를 구경했다. 송당리였다. 종달리, 송달리. 왜 이렇게 마을 이름까지 예쁜지 모르겠다. 우연히 걷던 곳에서 달빛 서림을 만났다. 가고 싶은 책방으로 적어두었던 곳인데, 이렇게 자연스레 만나지다니 신기했다. 사장님은 내가 좋아하는 옷차림이었다.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어, 저 사람 내가 좋아하는 옷 스타일이야.” 라고 말했던 그 사람이 바로 이 책방 사장님이었다. 이런 우연이 있다니. 그래서일까 그 공간이 더 좋게 느껴졌다. 자연과 환경, 불교에 관심이 있어 보이는 책들과 소품이 있었다. 난 항상 자연과 환경에 대한 책이나 어떤 사람의 생각, 말을 들으면 채식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남들이 뭐라 그래도 ‘그래, 잘하고 있어’하는 칭찬을 해준다. 이곳에서도 나를 칭찬하게 됐다.
귀여운 글씨체로 책방 이곳저곳에 메모를 남겨두고 ‘노 플라스틱 오션’이라는 문구가 담긴 액자와 그 밑에 웃고 있는 거북이 인형이 눈에 밟혔다. 책방 주인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공간이어서 좋았다. 다시 안 찾아가곤 못 배기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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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조금만 달려도 날씨가 다르다. 구름의 크기와 습도도 다르다. 사려니숲길에 도착하니 안개가 피어나고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사려니숲길은 ‘살안이’또는 ‘솔안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에 쓰이는 ‘살’과 ‘솔’은 신성한, 신령스러운 곳이라는 뜻이다. 즉 사려니는 신성한 곳이라는 뜻이다. 과연 뜻 대로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빽빽한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봐야 나무의 가지와 잎을 볼 수 있다. 거짓이 없는 곳 같다. 나무와 풀이 가득한 곳인데 진실과 거짓이 무슨 상관이냐 할 수 있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그렇다. 거짓이 없고 없어야 할 곳 같다. 아무 말 없이 바람이 내는 목소리와 빗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사람이 많았지만 걷다 보면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고요했다. 그래, 어떤 말도 필요 없다. 그냥 가만히 자연이 하는 말을 듣고 돌아갈 뿐이다. 나에게 하는 말을 듣고, 나를 더 잘 알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