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돌을 던지지 마시오

2018. 10. 25. 22:03에세이 하루한편



  공원 근처 카페 2층 창가 자리에 앉아 글을 썼다. ‘게이샤 블러썸 그린티라는 처음 보는 차 한 잔 시켜놓고. 키보드를 두드리다 가끔 고개를 들어 공원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집중이 안 되거나 생각을 정리할 때마다 그냥 멍하니 바라봤다. 비둘기들이 갈색 지붕 위에 앉아있었다. 이십여 마리 정도 돼 보였다. 다 같이 후두두 날갯짓을 하며 한 방향으로 날다가 또다시 반대쪽으로 다 같이 날기를 반복했다. 수족관에서 정어리들이 떼를 지어 헤엄치는 것 같았다. , 재밌겠다. 속으로 생각했다. 글을 쓰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전동차를 끌고 나온 할아버지가 과자 봉지를 뜯고 있었다. 산책 나올 때마다 보던 할아버지였다. 자전거 길과 산책길 사이에 난 넓고 기다란 잔디밭에 전동차를 비스듬히 세워둔 채였다. 할아버지는 손으로 과자를 한 움큼 쥐어 잔디밭에 뿌렸다. 수십 마리의 비둘기가 동시에 위에서 아래로 움직였다. 휠체어 옆엔 고양이 한 마리도 있었다. 공원에서 자주 보이던 하얀 바탕의 검은색 얼룩이 있는 고양이였다. 할아버지 발치에 웅크리고 앉아 비둘기를 응시하고 있었다.

  고양이만큼 집중력이 좋은 동물도 없다. 뚫어지게 쳐다보며 사냥을 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때가 되면 펄쩍 뛰었다. 비둘기들이 동시에 푸득거리며 반대쪽으로 날아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기다리고, 기다렸다. 몸을 더욱더 낮게 만들고 눈은 더 동그랗게 뜨고선. 걸음 소리가 나지 않게 살금살금 걸어가 재빨리 낚아챘다. 한 마리를 입에 문 고양이는 자신의 영역에 두려는 듯 두리번거리며 걸어갔다. 인터넷에서 고양이들이 주인에게 선물하려고 매, , 벌레 등을 사냥해 가져다준다는 글을 본 적은 있지만, 눈앞에서 직접 새를 사냥한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주 순식간이어서 나도 깜짝 놀랐다. 배가 고팠는지, 장난인지, 본능인지 모르지만, 그 순간 깜짝 놀라 눈을 떼지 못했다. 입에 물고 있다가 잔디밭 위에 살짝 내려놓았다. 죽은 건지 날개를 쫙 펴고 가만히 있는 비둘기가 안쓰러워 보였다. 그때 아주머니 한 분이 그 주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고양이가 비둘기를 사냥하는 장면을 모두 본 것이었다. 아주머니도 당황했는지 철퍼덕 엎어져 있는 비둘기를 잠시 바라봤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재빨리 일어나 다시 고개를 앞뒤로 흔들거리며 걸었다. 안심한 아주머니는 고양이에게 다가가 발을 구르며 위협했다. 그러지 말라는 뜻이었다. 고양이는 자신을 위협한다는 걸 눈치채고 벤치 뒤로 숨었다.

 

  난 예전에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는 걸 본 적이 있다. 고양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도 그 장면을 보고 나선, 고양이도 동물임을 인식하게 됐다. 사냥할 줄 아는 야생성이 살아있는 동물임을 다시 상기한 거였다. 티브이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에서 야생의 사자가 얼룩말을 사냥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살금살금 기어가 목을 물어뜯는 모습은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얼룩말은 금세 피 칠갑이 되어있었다. 안돼! 피해! 라고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상대는 밀림의 왕 사자였다. 그럼 아무 죄 없는 동물을 사냥한 사자에게 왜 그러냐 말할 수 있을까? 그럴 순 없었다. 야생은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동물을 사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채식을 하는 나지만, 동물은 동물들만의 법칙이 있는 거다. 바다표범을 사냥하는 북극곰을 볼 때도 그렇다. 마음 같아선 하프물범이나 바다표범을 구해주고 싶지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세계가 그렇게 지어진 이유가 있는 거였다. 모든 생물은 생태계의 정교한 틀 안에 살아가는 존재며 각각의 이유와 역할이 있다. 그렇게 만들어졌으며 그게 자연의 섭리다. 그러니 고양이가 비둘기를 사냥했다고 해서 돌을 맞을 필요는 없다. 고양이도 나름대로 생산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들에겐 본능일 뿐이다. 아주머니에게 말하고 싶다. 놀란 가슴 진정하시고 두 번 다시 돌을 던질 생각일랑 말아주시라. 우리는 누군가에게 돌 던질 필요도 없으며 맞을 필요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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