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반, 행동 반

2018. 10. 22. 23:53에세이 하루한편



  지하철역 다섯 정거장 거리를 걷고 달렸다. 두 정거장은 걷고 세 정거장은 자전거를 타고서. 서점에 들러 책을 보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어제 탄 따릉이 때문에 허벅지가 욱신거렸지만, 한 시간을 걷고 한 시간은 자전거를 탔다. 아픈 허벅지가 마구 쑤셨다. 스쿼트 50개를 연속으로 할 때처럼 뻐근했다. 아무래도 걸어야 했다. 오늘따라 마음이 복잡했다. 친척 누군가가 취업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기뻐하는 모습을 봐서일까. 꽃다발 하나 사 들고 오는 엄마의 모습에 나는 뭐 하는 거지? 라는 물음이 절로 나왔다. , 또 이 비교! 비교 안 하기로 해놓고선.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잖아, 왜 그렇게 내 안의 나는 나를 못살게 구는지 모르겠다. 공기업이니 잘됐다며 제 일처럼 들뜬 엄마 목소리가 나를 더 시무룩하게 만들었다.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주눅이 드는 거지. 죄지은 것도 아닌데. 그 생각을 떨쳐버리려 걸었다. 편의점에서 잘 먹지도 않는 커피 하나 사 들고서. 핸드폰으로 지도를 켜 집으로 가는 방향만 확인하고 무작정 걸었다. 사람이 참 많았다. 어딜 가나 그런 것 같다. 이 사람들은 다 뭐 하는 걸까. 어디서 온 걸까. 이들도 내 정체를 궁금해할까? 평일 오후를 느낄 수 있다는 건 현재 내 상황의 가장 큰 장점 같다. 마음이 가끔, 아니 자주 불안하다는 것만 빼면.


  여행을 다녀와서 느끼는 건 다시 가기 전 그때로 마음이 점점 돌아간다는 거다. 여행 중 느꼈던 감사함이나 자연의 위대함 등은 잊지 않았지만, 또다시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건 똑같다. 고민이 저절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점을 하루하루 느끼고 있다. 내가 변해야, 내 마음이 변해야 태도가 바뀐다. 그럼 어떤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더 나은 선택을 하거나 넓은 시야로 본 뒤 판단할 수 있다. 남들과 다른 가치관을 가질 수도 있고. 하지만 나는 대부분 여행에서 얻은 휴식으로 힘을 얻는 것뿐이지 다시 돌아와도 내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다. 여행에서 삶에 고민을 모두 다 해결한 사람이 있을까? 그야말로 정답을 찾은 사람이? 모르겠다. 만나고 싶을 뿐. 그러니 아직 나에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다. 그대로. 피하고 싶어 귀퉁이에 숨어다니다가 없어지길 바랐던 것들이. 하고 싶었던 것들이 진짜인지 확인해 봐야 하고, 그걸 정말로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시험해 봐야 했다. 지금은 그게 글쓰기.

  어떤 때는 묻고 자시고를 떠나 또다시 휙 떠나버리고 싶다. 나는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는 걸 아니까.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마음가짐과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니, 내 가치관을 다시금 되새기고 싶어서다. 여행한 뒤 다시 돌아오면 자연을 벗 삼아 살고 싶다고 느끼다가도 지금 당장 돈이 되는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사이를 오가는 것처럼. 아직은 전자가 더 좋아 저울질을 하면 그쪽으로 기울지만. 하지만 무턱대고 떠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으니 별수 없다. 이왕 고민할 거 제대로 해봐야지. 중심을 단단히 잡고 나선 내가 좋아하는 환경에서 살 거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고민하고 나를 부르는 곳을, 마음속에 품은 곳을 자주 찾아가는 것뿐이다. 잠깐의 산책이 될 수도 있고 두 시간짜리 여정일 수도 있다. 그렇게 잠시 얻은 휴식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거다. 그래야지 내 마음이 잠깐 평온해지니까.


  이렇게 적고도 인도 여행을 검색하게 된다. 아무래도 내 안에는 글 쓰는 사람 따로, 행동하는 사람 따로 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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