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기 09. 까맣게 다 타버릴 거에요

2018. 8. 28. 23:42여행을 기록하자/제주도 한달살기

[09]
청굴물-세기알해변-관곶

다시 가기로 했던 청굴물을 아침 일찍 찾았다. 오전 10시 반쯤 찾은 청굴물은 어제와는 다른 빛깔과 풍경을 보여줬다. 어제는 푸르른 이끼가 드넓은 들판 같아 보였다면 오늘은 파랗다. 신비의 원샘이 물에 잠기고 진입로가 파도에 거의 잠겼다. 같은 바다인데, 이렇게나 다르다.




물장구를 쳤다. 수영은 못해서 어설프게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근처 해변으로 가볼까 해서 찾은 곳은 김녕 세기알해변이다. 미끌 거리는 바위가 많았던 청굴물 보다 확실히 해수욕장이라 물놀이 하기가 편했다. 옥색 빛 바다에서 정신없이 놀았다. 따끔거리는 통증에 깜짝 놀라 모래 위로 달려 나오기 전까지는. 해초에 닿은 건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뾰족한 해조류가 있는지 생각하던 찰나 혹시 해파리에 쏘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다다르자 해변 근처 두둥실 떠다니는 해파리를 봤다. 실제로는 처음 보는 해파리다. 내가 저 생물에게 쏘였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시간이 지나 따끔거리는 건 괜찮아졌지만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요즘은 하얀 피부보다 까맣게 그은 피부가 좋다. 제주에 여행 올 때마다 봤던 사람들은 대부분 까맸다. 길가에 지나가며 우연히 본 사람들이나 음식점에서 주문을 받으려고 온 사람들 모두. 난 그들의 피부색이 좋았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란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일까.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 꼭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태닝이다. 태닝 오일도 서울에서 직접 가져왔으니 살을 태우기만 하면 된다. 근데 태닝 하기도 전에 살이 빨갛게 익었다. 샌들 자국을 제외하고 타버린 발등은 마치 까만 김을 올려놓은 것 같고 선글라스를 쓴 부분을 제외하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취한 것 같다. 손등이며 팔은 따가워 죽겠다. 잠깐 노는 거니 선크림을 안 발랐던 것이 화근이다. 이렇게 햇빛이 강할 줄 몰랐다. 해파리 때문에 따가운 피부 햇빛 때문에 더 따갑지만 괜스레 좋다. 나도 점점 제주와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어서. 까맣게 타 버려도 좋다. 더 탈 거다. 점점 이곳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까맣게 말고 붉게 타 버리는 곳, 노을을 볼 수 있는 곳, 관곶에 갔다. 오늘 예상 일몰 시각은 오후 7시 5분이다. 미리 가서 기다리려고 했지만 7시쯤 도착하니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수평선에 구름이 있고 해가 걸려있다. 천천히 구름 사이로 바다 너머 어딘가로 가라앉는다. 아름답다. 해가 지니,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지만 나는 15분을 더 기다리기로 했다. 주변이 점점 어두워지고 바다에 띄운 불빛들은 밝아진다. 붉은빛이 하늘을 물들이고 진해지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낙조. 온종일 까맣게, 붉게 타 버린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