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쓴다

2018. 9. 23. 23:59글쓰기 우당탕탕



  열두 시가 되기 전에 글 하나를 써야 한다. 매일 글 하나씩 쓰기로 한 지 한 달 하고도 이십 일이 넘었다. 그동안 뭐라도 쓰기 위해 메모장을 열고 컴퓨터를 켰다. 여행 중에도 예외는 없었다. 제주도에선 이른 밤, 일곱 시 반이 되면 밥 생각, 집 생각이 났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고 오늘 하루를 정리해야 한다고 스스로 재촉했다. 이르면 여덟아홉 시, 늦으면 열 시엔 글을 쓰기 시작해 열두 시까지 썼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오니 추석 연휴가 시작될 즈음이었다. 갑자기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글 쓰는 시간을 찾기가 어려웠다. 글 쓰는 데 시간을 내는 게 어려웠다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글 쓰는 시간을 찾는 게어려웠다. 열 시부턴 온전히 글 생각만 했던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삼시 세끼를 같이 먹고 먹은 걸 함께 정리하고 산책을 하니 열 시는 훌쩍 지나버렸다.


  뭐라도 쓰려면 가족들 틈에서 나만의 시간을 찾아야 했다. 열한 시 반이 되어 뭐라도 쓰기 시작했다. 이제야 틈을 발견해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다. 일찍 쓰고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한글 파일을 열어 흰 바탕에 뭐라도 적으려고 하니 오전 열한 시에 낮잠 한 시간 반을 잔 게 아까웠다. 잠자리가 바뀌어 그런지 잠을 못 자 피곤이 몰려와 자버린 거였다. 어영부영 보내다 보니 글 쓸 시간을 붙잡지 못한 하루였다. 무엇을 쓸까 생각하지도 못했다. 열한 시 반, 이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머리를 감고 말리기 위해 선풍기를 의자 뒤에 두었다. 뒤통수에 높이와 방향을 맞췄다. 글은 빨리 써야 하고 머리는 말려야겠으나 잠은 일찍 자고 싶으니 하는 행동이다. 그렇게 적어 내려간다. 그래도 글 쓰는 시간을 찾기 위한 글이라도 썼으니 됐다. 뭐라도 적었으니 됐다. 매일 이렇게 적으면 더 나은 글이 되겠지. 그날을 위해서 난 계속 뭐라도 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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