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16. 20:58ㆍ에세이 하루한편
노트북이 없으니 외출 횟수가 확 줄었다. 글 쓸 땐 아래아한글 프로그램이 제일 편해서다. 방에 있는 데스크톱을 붙잡고 있다. 빨리 사야 하는데. 마음이 급하다. 인터넷을 뒤져 적당한 가격과 성능을 고르는 중이다. 저번에 구매했던 노트북보다 사양이 살짝 좋은 거로 사자니 가격이 훌쩍 뛰었다. 최소 60만 원은 줘야지 버벅거리지 않고 쓸 만할 것 같았다. 제품은 왜 이리 많은지 비교하는 데 두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결론은 아직도 못 내렸다. 제일 맘에 들었던 제품은 태블릿과 노트북이 합쳐진 형태로, 꽤 쓸만해 보였다. 근데 키보드가 터치패드였다. 난 전자 제품에 쓸데없이 터치를 넣는 게 싫다. 키보드가 주는 물리적인 소리와 느낌이 사라지는 게 싫다. 타닥타닥 소리를 들으며 글을 써야지 지잉, 하는 진동을 느껴야 한다니. 그렇게 글을 쓴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너무 이상하다. 그럼 그렇지, 문서 작성하는 데 불편하다는 후기가 있어 예상 구매 목록에서 지웠다. 아, 이것도 탈락이네.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쓸 용도에 맞는 제품은 없는 것 같았다. 무게가 가벼우면 내장 메모리 용량이 너무 적어서 걸리고, 가격과 성능 모두 좋으면 무게가 걸리고. 성능, 무게 다 괜찮으면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이래서야 살 수나 있을는지. 두 개를 합친 제품을 사려다 하나만도 못한 성능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판단을 믿어야 하는데, 이도 저도 아닐까 봐 겁났다. 마음 같아선 백만 원이 넘는 걸 구매 하고 싶은데 손이 덜덜 떨렸다. 가격 앞에 작아졌다. 내가 좀 짠순이 여야지. 결정적으로, 내가 큰돈을 들여서 구매하고 싶은 마음이 없단 걸 확인했다. 정말 간절하게 필요했으면 할부로 샀겠지. 그렇지 않으니까 빙빙 돌아서 이건 어떤지 저건 어떤지 재고 있는 거였다. 선택을 해야 했다.
그럼 저렴한 노트북을 구매하고 태블릿을 사는 건 어떨까 싶어 아이패드 중고 시세를 검색해봤다. 그림은 아이패드지! 속으로 외치면서. 중고가도 최저 60만 원은 줘야 가능했다. 애플펜슬과 연동되는 제품은 아이패드 프로만 가능했다. 60만 원이 누구네 집 강아지 이름 같았다. 예전에 그림 수업을 들을 때 선생님에게 나도 아이패드를 사고 싶다는 얘기를 했던 게 떠올랐다. 내 그림 실력이 아직 그 정도 장비를 사용할 만한 게 아니란 걸 알았지만. 선생님은 얘기했다.
“종이가 먼저예요. 사서 써보시면 알 거예요, 종이가 먼저라는 걸.”
그래, 내가 뭐 대단한 거 하려는 것도 아니고 일상 만화 그리고 싶어서 그런 건데. 처음부터 고가의 아이패드를 살 필요는 없지. 그래도 수업을 듣는 사람 중에 아이패드를 들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걸 보고 부러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던 게 떠올랐다. 왠지 그걸 사면 내 그림 실력도 더 좋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다 기분 탓인데. 다시 검색 모드에 돌입했다. 입문, 취미용으로 그리기엔 ‘이지드로잉 태블릿’이 딱 맞았다. 컴퓨터에 연결해서 쓰는 제품으로 액정이 따로 없어 모니터를 보고 그림을 그려야 한다. 비슷한 제품 중에 조금 더 비싼 브랜드인 와콤까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밖에선 종이에 그리고 집에선 이지드로잉에 그려서 날 시험해보자. 꾸준히 그리고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겠다 싶으면 그때 다시 사자. 그게 나을 것 같았다. 나와 타협했다.
며칠 전 인생은 타이밍이라느니 노트북과 태블릿이 합쳐진 제품을 사야겠다고 적었던 게 생각났다. 역시 생각은 빠르다. 글보다 빠르다. 아, 너무 쉽게 적었다. 타이밍인지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결론은 저렴한 노트북+이지드로잉 태블릿이라는 거다. 더 의의 없다. 문서 작업을 기본으로, 저번에 샀던 것보다는 조금 더 좋은 걸 다시 찾으러 가봐야겠다. 윈도우 10을 깔고 나니 용량이 7기가 남았던 것보다 괜찮은 것을 사면된다. 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어렵다, 어려워. 물건 하나 살 때면 갈피 못 잡는 내 마음이 제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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