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책과 내 글 사이의 나

2018. 12. 27. 23:49에세이 하루한편


  

  도서관에 다녀왔다. 얼마 만이지. 한 이주만인가. 그동안 내 글 읽느라 멀미 났던 나날을 보낸 탓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지 못했다. 어제가 반납일이었는데 정신이 없어서 하루 연체를 했다. 이젠 제발 다른 사람 글 좀 읽고 싶다! 속으로 외친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도서관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같은 글을 계속 읽고 고치고 다시 쓰는 게, 그걸 수십 번 반복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내가 쓴 거지만. 아니 오히려 내가 쓴 글이라 더 그랬다. 과거의 나, 이런 문장을 썼단 말이야? 이 단순한 맞춤법도 모르고? 하며 기가 막힌 상태가 될 때도 있었으니까. 수십번 읽었으니 이젠 더 틀린 건 없겠지, 하며 맘 편히 책장을 쓱 넘겼는데 오타와 띄어쓰기 오류를 찾았을 때의 그 느낌이란. 등골이 오싹할 정도다. 이대로 100권을 인쇄했다면 내 똑같은 실수가 그대로 착, , , 종이에 배어있었을 테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더 반가웠다. 타인의 책으로 가득한 공간, 도서관이. 날 선 상태로 글을 읽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반가웠다. 긴장을 풀고 편하게 누군가의 생각을 가만히 듣기만 하면 된다. , 얼마나 기다려온 순간인가. 도서관은 여전했다. 답답할 정도로 따뜻하고 그 온기에 못 이겨 입 벌리고 자는 누군가가 보이고, 각자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나도 오늘은 어떤 세계로 떠나 볼까나, 책을 골랐다. 서가를 왔다 갔다 하며 눈에 띄는 책을 뽑아 책장을 들추고 왼손에 쥐고 또 다른 책 고르기를 반복했다. 네 권의 책을 빌렸다. 연체료 200원을 내고 일부러 대출한 거다. 빨리 읽고 싶어서. 이렇게 타인의 책을 읽으니 내 책 작업이 끝났다는 게 실감이 났다. 사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지만. 새삼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나에게 얼마나 편안한 시간인지 깨달았다.

  내 글도 누군가에게 편안한 순간을 선사하기를 바란다나에게 먼저 그 시간을 선물하고 싶으니 내일은 온종일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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