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모를 사이

2019. 1. 8. 00:33에세이 하루한편



    ‘가족이란 남들 안 볼 때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땐 적잖이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다 버리고 싶다니. 충격 때문인지 저 문장은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탄했다. 저렇게 솔직한 표현이 또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표현이다. 가족만큼 이상한 관계는 본 적이 없다. 부부는 서로를 선택했다지만 부모와 자식은 아니다. 운명과도 같다. 무작위 뽑기처럼.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듯 복잡하다. 이처럼 복잡한 관계가 또 있을까. 그 모든 일이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벌어진다. 사랑해서 널 때리는 거고, 네가 하고 싶은 걸 말리는 거고, 사랑해서 너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거고, 사랑해서 너에게 의지하는 거고, 사랑해서, 사랑해서.

    사랑 핑계를 대고 잊진 않은 지 확인해야 한다. 감춰진 감정을, 억누르던 욕구를 사랑으로 포장하고 있진 않은지. 희생을 아무리 예쁘게 포장한다 한들 희생은 희생이다. 사랑의 범주 안에 희생이 있다 한들, 또는 그 반대라 해도 개별적인 거다. 사랑이 희생의 동기가 될 수는 있어도. ‘사랑=희생은 무조건 성립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원치 않는 희생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이 생각에 이르러 내 상황을 돌이켜보면 미칠 것 같다.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내가 도대체 뭘 하는 건지 서러워 눈물이 뚝뚝 흐르다가도 다시 짜증이 나고 화가 나고, 열이 오른다. 할머니를 돌보다가 내가 죽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할머니가 살수록 난 점점 죽어가는 기분이 든다. 엄마 아빠의 부탁을 들어준 걸 후회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가족이 얼마나 될까. 모두 참고 사는 걸까. 난 아직 잘 모르겠다. 누군가를 선택하고 낯선 이들이 떼거리로 내 가족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 겁난다. 그래서 결혼도 겁난다. 가족들 간에도 거리감이 필요하다. 그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타인이다. 나 아닌 사람은 모두 다 타인이니까. 그러니 가족 구성원이 되었다고 해서 그들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을 사랑하는 건 방금 만난 사람을 사랑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가장 좋다. 서로 쓸데없는 요구를 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으면 된다. 각자 살길 각자가 찾으면 되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된다. 서로가 얽히고 얽혀 풀 수도 없게 되고. 그래서 자르는 거다. 잔뜩 꼬여버려 도저히 풀 수가 없으니까. 생각할수록 가족은 영영 모르는 사이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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