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사흘

2019. 3. 15. 00:16에세이 하루한편

 

310일 일요일 오전 822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7시 반에 병원에 도착하니, 할머니는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서 숨을 쉬고 있었다. 의사는 빠르면 한 시간, 늦으면 오전 중으로 돌아가실 것 같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손발이 찼다. 의식 없는 눈동자를 깜빡이지 않은 채. 서서히 숨이 멎었다. 눈을 뜬 채로 임종하셨다. 어떤 말도, 손짓이나 몸짓도 없이 조용히 가셨다. 병원에 오는 길에 임종 소식을 들은 고모가 울면서 병실에 들어왔다. 엄마, 왜 눈을 못 감았어. 엄마, 엄마. 눈을 감겨드렸다. 강북 삼성 요양병원과 가까운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으로 빈소를 정했다. 사망진단서를 떼고 세브란스에서 보내준 차로 시신을 옮겼다. 뒤따라서 장례식장을 가려 택시를 잡는 도중 아빠가 말했다. 할머니 진짜 돌아가신 거 맞냐.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할머니의 숨이 멎었다는 게, 할머니가 더는 내 이름을 부를 수 없다는 게,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도. 아빠가 상조회와 계약사항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귀담아들었다. 오후 2시부터 조문을 받았다. 집에서 밥을 먹고 짐을 챙겨 다시 장례식장으로 갔다. 빈소엔 국화꽃이 하나둘 들어왔다. 은은한 향기가 방 안에 풍겼다. 하얀 국화꽃이 열을 지어 꽂혀있고 그 위에 영정사진이 있었다. 분홍색 한복을 입고 찍은 고운 할머니 얼굴을 보니, 눈가가 뜨거워졌다. 진짜구나. 눈물이 쏟아졌다. 시도 때도 없이 흘렀다. 교회 손님이 많이 오셨다. 할머니와 정을 나누던 권사님들이 눈물을 흘렸다. 오래 보고 알던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울다가 괜찮다가 울기를 반복했다. 11일 오후 4시에는 입관을 했다. 깨끗한 삼베옷을 입고 있는 딱딱한 할머니의 손과 팔을 어루만지고 하얀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곱게 화장을 한 뒤 자주 바르시던 분홍 립스틱까지 예쁘게 칠해져 있으니 꼭 살아계신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깊은 잠에 빠진 것만 같아 할머니, 일어나보세요. 말하고 싶었다. 몸이 돌처럼 딱딱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할머니를 들어 관으로 뉘고 뚜껑을 닫았다. 바퀴 달린 기다란 이동 장치 위에 관을 올려 어딘가로 갔다. 입관 예배를 드리고 울기를 반복하고 조문객을 맞았다. 그렇게 하루가 또 흘렀다.

발인은 12일 화요일 오전 720분이었다. 벽제 화장터로 갔다.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올 것처럼 습기가 가득했다. 새가 지저귀는 벽제는 공기가 좋았다. 쌀쌀해서 몸이 움츠러들었다. 오빠가 영정사진을 들고 먼저 걸으면 관을 들고 화장터로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갔다. 이름이 맞는지 확인한 뒤 할머니는 화장터 안으로 들어갔다. 23번 화장터 흰색 문이 닫혔다. 한 시간 반이 걸린다고 했다. 9시가 좀 넘었지만 이른 점심을 먹었다. 파주까지 가려면 점심 먹을 시간이 없으니 미리 먹어둬야 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시 화장터를 찾았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할머니의 뼈 몇 개가 보였다. 마스크를 쓴 사람이 고관절 수술을 할 때 끼워 넣은 인공관절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봤다. 버려주세요. 동그란 구슬 같은 인공 관절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나머지 뼈는 곱게 갈아 유골함에 넣었다.

파주 선산에 가서 묘지를 판 뒤 다시 플라스틱 통 안에 유골함을 넣었다. 묘지를 만들어주는 사람이 흰 가루와 섞인 흙을 세 번씩 골고루 뿌리라고 했다. 나도 세 번을 뿌렸다. 할머니, 좋은 곳으로 편안히 가세요. 천국 가세요. 기도하면서. 유골함에 틀니도 함께 넣었다. 그렇게 할머니를 묻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실감이 안 나고 피곤이 가시질 않았다. 까무룩 잠이 들어 일어나 보면 새벽이 돼 있었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다음날 바로 출근을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는 졸음과 슬픔을 잠시 털어내고 세상 밖으로 나갔다. 내가 살던 세상이 이런 곳이었지. 다르게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출근을 했다. 검은 옷을 입고선. 차라리 시간이 많았으면 슬픔 속에서 허우적댔을 텐데 이게 나을 거라 생각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생각하며 꼬박 사흘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