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상상하기

2019. 4. 30. 23:59에세이 하루한편

연간 계획서를 쓸 것

매일 일기를 쓸 것

내가 원하는 모습을 상상할 것

 

<호호브로 탐라생활>의 출간 기념 저자와의 만남에 다녀왔다. 작가는 질의응답 시간에 성취의 비결을 묻는 대답으로 세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고리타분하게 들리는 말일지 몰라도 오늘만큼은 달랐다. 비혼, 제주도 이민, 오조리 산책, 개 키우기 등 다양한 주제 중에서 제주도 이민에 관심이 있어서 무작정 신청한 거였는데 이상한 곳에서 마음이 꿈틀댔다. 바로 상상이었다. ‘상상이란 단어는 비혼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들려줄 때부터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했다. 비혼이 뭐 지금부터 1, 이라고 선포하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처음부터 나 비혼 할 거야, 이렇게 이야기한 건 아니에요. 제 미래 모습을 그려봤거든요. 이런 모습도 있고 저런 모습도 있는데 웨딩드레스 입은 제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더라고요. 언젠가부터 결혼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내가 편한 내 모습, 내가 원하는 모습을 천천히 그리다 보니 지금처럼 살게 됐어요. 자연스럽게요.

상상이라. 내가 상상하는 내 모습이 있다. 글을 쓰는 나, 소설을 쓰는 나. 항상 뭔가를 쓰고 고치며 머리를 비우기 위해 매일같이 산책하는 나. 세계를 돌아다니며 조용한 곳을 찾아 머무르는 나. 자연을 보고 감탄하며 감사하는 나. 따뜻한 차를 마시는 나. 한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고양이도 있다. 제주도 생활도 떠오른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사는 내 모습. 모두 내가 원하는 모습이다. 작가는 어떤 주제 끝에 덧붙여서 말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변에 선포하고 다니세요. 오늘따라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왜 이렇게 와닿는 걸까. 모르겠다. 미뤄두었던 소설 강의를 신청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선포는 아직 어려우니 이곳에라도 쓰려고 한다. 수업을 듣고 소설을 제대로 한 번 써보겠다고. 언제 완성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강연이 끝났다.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작가님에게 내 책을 한 권 드렸다. 잘 모르겠다. 뭘 바라서도 아니고 정말 강연을 잘 들어서 답례의 의미로 드리고 싶었다. 이것저것 마음에 와닿는 말을 많이 들었으니 앞으로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첫 번째 행동이기도 했다. 독립 출판물을 냈어요, 라고 말하는 소심한 선포랄까. 작가님은 내 책을 보더니, SNS에서 이 책을 봤다며 읽어보진 못했어도 알고는 있다고 이야기했다. 신기했다. 나는 다시 한번 강연을 잘 들었다고 인사한 뒤 악수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온전한 독립을 하는 그날까지 오늘의 이야기를 잊지 않겠다고, 상상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에세이 하루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흰색 화분 같은 곳으로  (0) 2019.05.02
5월 첫날의 주저리  (0) 2019.05.02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사람들  (0) 2019.04.28
백두산 엔딩  (0) 2019.04.27
마음을 현재에 두어야 할 때  (0) 2019.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