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엔딩

2019. 4. 27. 23:52에세이 하루한편

 

백두산이 폭발할 수도 있대. B에게 전화를 걸어 대뜸 말했다. 잘 있는 거지. 40분 거리에 살고 있지만 먼 곳에 사는 것처럼 안부를 물었다. 백두산? 백두산이 어디 있는 거지? B는 이렇게 물었다. 북한에 있잖아. 백두산 기사 아직 못 봤어? B는 그제야 기사를 확인했다. 그러네, 심각한 건가 보네. , 보기보다 심각해. 이런저런 대화를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백두산에 대한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집에 들어와 씻고 머리를 말리다가도 문득 생각이 났다.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엔 백두산 폭발이라는 단어가 없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수백 개의 기사가 쏟아졌다. 화산 폭발의 징후로 든 근거를 읽어봤다. 백두산 화산 호수인 천지가 부풀어 올랐고, 이산화질소가 나왔다. 더불어 수온까지 상승했다. 불안을 호소하는 댓글이 넘쳐났다. 나 또한 재앙이 닥쳐올 것 같은 분위기에 불안해졌다.

일각에선 2030년 이내에 백두산이 분화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기 946년에 발생한 화산 폭발인 '밀레니엄 대분화'는 남한 전체를 1m나 덮을 수 있는 엄청난 양의 분출물을 쏟아냈고, 과거 1만 년 이래 지구상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분화 사건에 속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니 백두산이 진짜로 폭발한다면 그 규모가 상상치도 못할 거라는 전망이었다. 상상도 못 할 정도면 어느 정도일까. 며칠 뒤 지인인 D를 만나 서로 사는 얘기를 했다. 대부분 내가 들어준 셈이었지만. , 근데 너 백두산 기사 봤어? D가 물었다. , 봤어. 갑자기 그런 것도 아니고 폭발 조짐은 예전부터 있었다는 데 이제야 기사 내는 거 웃기지 않냐. 뭔가 있는 것 같아. 숨기려고 하는 거지 뭐. 맞아, 좀 의심스럽긴 해. 내가 말했다. 아무튼,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야 돼. 언제 백두산이 폭발할지 모르잖아. 우리가 내린 결론이었다. 이 말을 끝으로 우리는 헤어졌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건 뭐지. 백두산을 핑계 삼아도 떠오르는 건 없었다. 똑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내 모습뿐이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태도인 건가. D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사람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 해. D의 단골 멘트였다. 나 또한 동의하는 말이지만 어째서인지 백두산을 핑계 삼아 뭘 해보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순순히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 뿐. 왜일까. 철이 든 걸까, 열정이 사라진 걸까. 어떤 쪽이든 좋다. 오늘처럼 사는 것도 괜찮은 엔딩이다.    

  

(출처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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