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터 10의 세계

2019. 5. 23. 23:19에세이 하루한편


내가 생각했던 5월의 모습과 비슷한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미리 점찍어둔 소설 강의를 듣는 나. 영상을 찍고 편집하며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는 나. 한 달도 남지 않은 공모전에 낼 새로운 글을 쓰며 머리를 쥐어뜯는 나. 소설 두 편을 잘 다듬는 나. 결과적으로 미리 점찍어둔 강의는 대기로 밀려나 다른 강의를 듣게 됐고 새로운 소설은커녕 미리 써둔 글을 뜯어고쳐야지 공모전에 낼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쓸 시간도 부족한데 영상 편집은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고. 마음은 바쁘고 날씨처럼 숨이 턱 막혀오는 느낌이다. ,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하나. 시작하는 게 어려워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을 정도였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냥 놀고만 싶다. 으아! 오늘 수업에서 선생님은 말했다. 우리 아들이 일곱 살인데 자기는 1부터 10까지만 알고 싶은데 왜 100을 배워야 하냐고 말하는 거예요. 일곱 살짜리가 갖고 싶은 게 열 가지가 넘겠어요?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필요한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왜 100까지 배워야 하냐고 묻더라고요.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100만 필요한가요? 1000, 10000 그 이상을 알아야 살 수 있죠. 가끔은 저한테 이런 말을 하는 학생이 있어요. 선생님, 뭣 모르고 막 쓰던 때가 더 낫던 것 같아요. 뭔가를 알고 배우니까 오히려 한자도 못쓰겠어요.

딱 내 얘기 같아서 뜨끔했다. 며칠 전 B에게 털어놓은 고민과 똑같았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문장 그대로였다. 뭘 배우니까 오히려 더 못쓰겠다고. 예전에 뭣 모르고 쓰던 때가 더 낫다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은 덧붙였다.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자꾸 넓혀가야 해요. 내 세계가 1부터 10까지였다면 100, 1000으로 자꾸자꾸 넓히면서 자신을 깨우쳐야 해요. , 그렇구나. 이 틀을 깨야 하는구나. 수업 도중 어째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 곰곰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나에게 직접 말하는 것 같았다. 네 안에 있는 무언가를 자꾸만 깨고 나가야 해. 그 말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래, 첫술에 배부른 사람이 어디 있겠어. 자꾸자꾸 쓰면서 느는 거지. 부담 갖지 말고 1부터 10이 아니라 1부터 20까지만 늘려보자. 내 글의 세계를. 그동안 안주했던 내 세계에 작별을 고하자. 10의 세계야 안녕. 난 더 고민하고 고민해볼게. 10까지만 더 늘려볼게. 편안함도 좋지만, 더 넓은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로 결정했어. 그동안 고마웠어. 네 세계에서 살던 때가 가끔 생각날 때가 올 만큼 난 멀리 갈 거야, 라고 적지만 마음이 한구석은 여전히 10의 세계를 그리워하고

하,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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