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온다

2019. 5. 25. 23:22에세이 하루한편

 

여름밤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는 놀이터다. 난 어느 여름밤 놀이터와 이어진, 의자 몇 개가 놓인 곳에 앉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의 하늘은 짙은 푸른색이었고 구름 몇 점이 가만히 떠 있었다. 이야기하다 고개를 돌려 쳐다본 친구의 얼굴에도 어스름이 앉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름밤은 푸른색에서 점점 짙고 깊어졌다. 어느덧 벽색이 된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시원한 바람이 내 팔과 다리를 스쳤다. 뜨겁던 한낮의 열기를 식혀주듯 은은하게 밤의 냄새가 퍼졌다. 풀 냄새와 시원한 공기가 뒤섞인 차분한 밤의 냄새.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때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얼마만큼 그 장소에 오래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신비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밤의 잔상만 남을 뿐이다.

여름이 온다. 일과를 마치고 창문을 활짝 열어놓으니 슬며시 밤 냄새가 창을 넘어온다. 하늘을 보니 어둑하다. 밤 냄새가 맞네. 어딘가 차분하게 만드는 밤이다. 숨을 크게 들이쉬어 한껏 들이마시고 나면 나는 그날 밤으로 돌아간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상관없이, 어디서나. 그 기억 하나로 보냈던 나날들이 떠오른다. 마음이 붕 뜨고 어떤 이야기든 말할 수 있을 것 같이 벅차던 밤. 너무 많은 것을 말하고 싶어 한마디도 할 수 없었던 밤. 여름은 이제 막 시작이고 수없이 마주할 밤이 기다린다. 올해도 그 기억을 떠올리며 여름을 보내야겠다. 언제 어디서든 시간여행을 시켜주는 여름밤을 만끽하면서. 사소한 기억 때문에 여름이 더 좋아졌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수많은 밤 중 하나를 막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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