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2019. 5. 22. 23:33에세이 하루한편


5월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낮잠을 자고 일어난 오후였다. 두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 통은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여서 받지 않았고 다른 한 통은 B에게서 온 전화였다. 전화를 끊은 건 오후 3시였다. 빨간 버튼을 누르자 휴대폰 화면에 뜨는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생산적인 일이를테면 여행기 한 편을 쓴다든가 새로 쓸 이야기 구상을 한다든가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옷을 주섬주섬 껴입고 밖으로 나갔다. 산책하기로 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걸으면 뭔가 좀 나아질 것 같아서. 신발장 옆 선반 위에 있는 검정 우산도 하나 챙겼다. 양산 대용으로 쓸 요량이었다. 날씨는 더웠다. 당장이라도 매미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쨍한 햇볕을 피하려고 우산을 챙겼지만 한 번도 펴지 않았다. 뜨거운 햇볕을 온몸으로 맞으며 걸었다.

갑자기 더워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갑자기. 왜 모든 건 갑자기 일어나는 거지. 사람은 갑자기 죽고 갑자기 태어나고 갑자기 사랑에 빠지고 갑자기 사고를 당하고. 연락이 닿지 않던 누군가와 갑자기 만나게 되고 갑자기 대화를 나누게 되고. 일상을 들쑤시는 감정에 갑자기 울어버리고. 갑자기 길을 잃은 기분이 들다가도 위로를 들으면 갑자기 괜찮아지고. 다시 날씨마저 갑자기 더워지고 갑자기 추워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갑자기 계절이 바뀌고. 모든 게 갑자기 일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미리 말해주지도 않고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불쑥 찾아와서 마무리는 알아서 하길, 하며 떠나버리는 것처럼. 이런 하루를 살아내면 또 하루를 살아낼 수 있고 그럼 이틀 사흘 나흘을 살아낼 수 있는 건가 싶다가도 잘 모르겠다가도. 중심을 잡은 듯 아닌 듯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기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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