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기 13. 테왁 하나 안고 가자

2018. 9. 1. 23:52여행을 기록하자/제주도 한달살기

[13]
하도 어촌 체험마을

9월의 첫날부터 비가 왔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데, 오늘은 해녀체험을 예약해둬서 걱정이 앞섰다. 어제 예약 전화를 하면서 만약 비가 오면 어떻게 하냐 물었더니 그럼 물이 깊어져 오히려 더 좋다고 했다. 오히려 바람이 불면 위험하니 알아서 결정하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취소할까 하다가 날이 점점 선선해지니 얼른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해녀 체험장으로 갔다.


도착해서 체험비 35,000원을 결제한 후 두꺼운 겨울 양말을 신고 해녀복으로 갈아입었다. 꽉 끼는 해녀복에 벨트를 둘렀다. 납작한 네모 모양의 돌을 엮은 벨트인데, 물에 잘 가라앉을 수 있게 하는 용도다. 진짜 해녀 삼촌은ㅡ제주에선 윗사람을 부를 때 남녀구분 없이 삼촌이라고 부른다ㅡ더 큰 돌을 엮어 맸다. 여자들은 머리가 물속에서 나풀거리지 않게 마스크를 썼다. 얼굴만 빼놓고 눈썹 위부터 목 전체를 감싸는 마스크다. 그 위에 수경을 썼다. 오리발과 테왁ㅡ물질할 때 쓰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로 가슴을 얹고 헤엄치는 용도로 사용된다ㅡ을 들고 바다 근처로 갔다. 간단한 준비운동을 하고 양손에는 장갑, 발에는 오리발을 끼우고 테왁을 양손 나란히 잡고 헤엄쳐 갔다.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나가자 해녀 삼촌이 먼저 들어간다는 말도 없이 물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어떻게 들어가는 건지 열심히 살피고 똑같이 따라 해봐도 도저히 잠수가 되지 않았다.
“삼촌, 잠수가 안 돼요. 어떻게 해야 돼요?”
“이렇게 슉, 한 다음에 풍 하고 들어가 버려.”
이렇게 단순한 일이라면 좋으련만 처음 접하는 바닷속 잠수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몸을 가라앉게 하려면 머리부터 깊게 넣어야 하는데, 숨을 오래 참아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꾸만 물 밖으로 나와 테왁을 잡기 바빴다. 바닷속을 봐도 뭐가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데 삼촌은 저기 소라 있어, 소라. 저기 있잖어! 한다. 잠수해서 얼른 잡으라고 얘기해도 잠수가 안 되니 삼촌도 답답했을 거다. 자꾸만 시도해보지만 어려워서 바위 근처 얕은 물로 갔다. 보말과 조개같이 작은 것들은 바위 근처에 붙어있어 눈에 잘 띄었다.
“삼촌! 저 이거 잡았어요. 이게 뭐예요?”
“응, 그거 삶아 먹어, 나도 잡았어. 삶아 먹어.”
삼촌은 그냥 삶아 먹으라며 얘기하곤 잡을 것이 뭐 있나 바닷속을 두리번거렸다. 이것저것 척척 잡는 삼촌의 망사리ㅡ채취한 해산물을 넣어두는 그물주머니로 테왁 밑에 달아 놓는다ㅡ를 보니 가득 찼다. 물고기, 소라, 보말로 가득하다. 그리곤 숨비소리를 내뱉는 또 다른 삼촌은 해삼을 잡았다며 껄껄 웃었다.


체험이 끝났다. 삼촌들은 해녀복을 벗으니 할망으로 변했다. 물속이 익숙해질 때 즈음 끝나니 아쉬웠다. 얼마나 잡았나 내 망사리를 봤다. 삼촌이 슬쩍 넣어 준 소라 하나, 보말 네 개, 이름 모를 것 하나가 다였다. 땅에선 두 다리가 있으니 이제는 테왁을 한 손에 들고 걸었다.

해녀들에게 테왁은 숨을 고를 휴식 공간이자 바다를 쉽게 건널 수 있게 해주는 이동수단이다. 테왁 밑에 달린 망에는 기쁨이 가득 담겨있다. 고된 숨과 바꾼 기쁨이다. 커다란 바다 안에서 뜨고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게 우리 삶의 모습과 닮았다는 걸 발견했다. 바다에 던져진 우리는 끊임없이 뭔가를 하며 살아간다. 가끔은 예상치 못한 파도를 만나기도 하고 파도를 피하려 헤엄치다 숨이 턱 끝까지 차기도 한다. 그럴 땐 쉴 곳이 필요하다. 잠시 숨을 고르며 하늘을 보기도 하고 더 나은 방향은 어딘지 생각해야 하니까.
땅 위에 쓸 수 있는 테왁 하나쯤은 만들어 둬야겠다. 힘들 때마다 꺼내 숨 좀 돌릴 수 있게. 우리, 가슴 아래 테왁 하나씩 안고 가자. 언제든 꺼내 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