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기 29. 우물쭈물하다 내 그럴 줄 알았지

2018. 9. 17. 23:17여행을 기록하자/제주도 한달살기

[29]
여름 문구사

토요일에 들렀는데 일찍 문을 닫아 아쉬웠던 잡화점 여름 문구사를 오늘 다시 찾아갔다.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주인장이 직접 만든 가방부터 펜, 메모지, 수첩, 동전 지갑 등이 있었다. 추억의 불량식품 아폴로와 쫀드기, 맥주와 콜라 모양 사탕도 있었다. 어른들을 위한 문방구 같았다. ‘우리도 아직 이런 귀여운 것들을 좋아한다고요!’라고 주인장과 손님이 다 같이 외치는 공간 같았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나도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소품을 좋아하니까.
주인장이 직접 쓴 손글씨가 벽 여기저기 붙어있고, 월마다 추천하는 것들(여행지나 먹거리 등)을 정리해둔 무가지를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무엇보다 직접 만든 가방에 ‘태풍 솔릭이 왔을 때 떨면서 만든 가방입니다’라는 식의 짤막한 이야기를 손글씨로 적어 태그를 함께 걸어놔서 물건에 담긴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아, 이제 보니 알겠다. 여름 문구사는 다양한 소품도 좋지만, 이야기가 많은 곳이어서 좋은 거였다. 그 이야기에 취해 아폴로와 쫀드기, 조개 모양 지갑을 샀다. 흰 조개 입 부분에 지퍼가 달렸고 그걸 열어 안을 보면 진주를 품고 있는 게 너무 재밌어서 샀다. 우연히 만난 물건이 주는 즐거움에 기분이 좋았다.

문구사 앞에는 간판이 있었다. 간판엔 주인장이 직접 그리고 쓴(것으로 추정되는) 게 붙어있었다. ​우물쭈물하다 내 그럴 줄 알았지’라고 말하는 곰 그림이다. 난 이 말을 좋아한다. 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인데, 말이 참 찰지면서 허를 찌르기 때문이다. 언제 들어도 ‘맞다, 그랬지!’ 하는 감탄사를 내뱉게 하는 말이다. 그래서 더 여름 문구사가 좋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도 얼른 책방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했다.


나도 책방 주인이 되고 싶다. 책을 팔고 손님들과 책으로 교감하고, 가끔은 독서 모임도 진행하면 좋겠다. 내가 쓴 책과 만든 가방과 지갑 등을 한쪽에 두고 판매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주변 길고양이들 사료도 챙겨준다면 더 좋겠다. 생각해보니 적절한 시기에 만난 문장이다. 그래, 다시 만난 이유가 있겠지. 서른 살 전에는 내야겠다. 꼭. 그곳이 제주가 된다면 더 좋겠다. 지금 나의 꿈은 내가 쓴 책을 출판하고 판매하는 것, 책방을 내는 것, 이 두 가지다. 나중에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며 이마 치며 후회하지 말고, ​행동해야겠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책방만큼은 우물쭈물하지 말아야겠다. 내 묘비명에 ‘우물쭈물하다 내 진짜, 진작에 그럴 줄 알았지!’라고 적기 싫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