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기 28. 어린 땅, 돌처럼 꿋꿋하길

2018. 9. 16. 23:01여행을 기록하자/제주도 한달살기

[28]
돌문화공원(갈옷 염색체험)-멘도롱장

예전엔 ‘제주’를 떠올리면 단순한 관광지라 생각했다. 지금은 바다, 하늘, 오름이 떠오르지만, 그중에서도 ‘돌’을 빼놓을 수 없겠다. 옛날부터 제주는 바람, 여자, 돌이 많다 하여 삼다도라 하였지만, 제주 사람들은 특히 돌이 많은 것을 원망했다고 한다.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밭 주위로 돌을 쌓아 담을 만든 것이 밭담이다. 신기하게 담을 쌓았더니 바람을 막아주고 농사를 도와줬다. 제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다른 말로 하면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 역시 ‘제주’하면 ‘돌’이다.
이처럼 도민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된 돌은 다양한 역할을 했다. 곡식을 다듬고 기름을 짜고 잘게 다지는 것부터 돼지의 밥그릇, 바둑알, 화장실에 발 올리기 위한 받침대까지 전부 돌이었다. 신앙의 역할도 했는데, 사람 모양과 비슷한 돌을 마을 입구나 중간에 두어 소원을 빌었고 액운을 막아준다 믿었다. 같은 이유로 돌탑을 쌓아 소망을 기원하기도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곳이다.


돌문화공원 안에 있는 돌박물관에서 제주의 생성 과정을 담은 영상을 봤다. 제주가 화산 폭발로 인해 이뤄진 섬이라는 것을 짧게 설명한 영상이었다. 어제 밭담 축제 해설사 선생님에게 들은 것을 덧붙이자면, 화산 분출로 마그마가 분출되고 용암이 굳은 것이 우리가 보는 수많은 바위, 돌이 됐다는 거다. 영상 내내 아나운서의 나레이션 엄숙하게 흘렀다. 차분한 목소리로 해주는 설명 중, 유난히 귀에 맴도는 말이 있었다.

‘제주도는 한반도 중 가장 어린 땅이다. 제일 나중에 생겨났기 때문이다.’

어린 땅이라, 어리다는 표현이 새로웠다. 땅에도 젊음과 늙음의 개념이 있구나. 내 생각에 제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급변하는 곳이다. 일 년만 지나도 새로운 건물이 이곳저곳 눈에 띄고 쉽게 사라진다. 짓고 부수고를 반복하는 이 땅이 제일 어린 땅이었다니, 조금 더 자라게 가만히 두어도 모자를 땅에 모난 짓을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이 땅을 너무 혹사하는 건 아닐까. 모든 게 욕심 때문이지 않을까. 공원을 떠나서도 이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글을 쓴다. 오전엔 서울로 돌아갈 항공권을 예매했다. 추석 전에 가야 하니 금요일에 떠날 예정이다. 여행 중간중간 월세와 연세 가격을 봐두었다. 다시 돌아올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따지기 시작하는 요즘이다. 자연 그대로의 제주를 사랑하지만, 턱없이 비싼 집값, 물가를 생각하면 안타깝다. 결국 너무 많은 사람 때문일 거다. 관광산업이 자리 잡고 평화의 섬으로 낙인찍힌 제주는 이제 너무 많은 걸 안고 가려는 듯하다. 제주 본연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나 또한 그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니, 최대한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가기로 약속한다. 언제 돌아와도 이 어린 땅이, 돌처럼 꿋꿋하게 버텨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떠나야겠다. 내 안에 제주 모양의 돌 하나 가슴에 심어 두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