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름

2018. 9. 30. 00:00에세이 하루한편



  안 쓰던 메일 계정을 삭제했다. 네이버와 구글 계정 하나씩을. 메일과 연결된 SNS 계정도 삭제했다. 인스타그램 아이디 세 개와 트위터 하나를. 뭘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놨는지 나도 날 이해하지 못했다. 오로지 읽는 용도로만 사용했으니 만들고 내버려 둔 것이었다. 영화음악을 하고자 했던 때에는 점잖은 이름으로 메일과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만들었고 비트메이커가 되겠다며 힙합을 한답시며 재치있는 또 다른 이름으로 하나 더 만들었더랬다. 세어보니 메일 계정 두 개, SNS 네 개. 총 여섯 개를 지웠다.  순식간이었다.

  나는 뭘 하나 할 때마다 깔끔한 시작을 원했다. 새로운 계정이 생기면 기분전환에 제격이었다. 술술 잘 풀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메일로만 포트폴리오를 보내고 음악 관련된 콘텐츠만 모아보고, 음악 사이트에 접속할 때도 이 아이디로만 하고…… 사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거였다. 오히려 로그인할 때나 아이디, 비밀번호를 찾을 때 어떤 메일을 적어야 할지 몰라 시간을 버렸다.


  난 일이 잘 안 풀리면, 누군가와 다투거나 문제가 생기면 그 일을 아예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안 풀리던 일의 시발점을 찾아 아예 그 선택을 하지 말걸’, ‘문제가 생기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등의 생각을 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현실에선 불가능해도 인터넷상에선 가능했다. 클릭 몇 번이면 내 정보가 삭제됐다. 그 순간, 쾌감이 있었다. 그곳에선 없던 사람이 돼버리는 게, 증발해버리는 게 쉬웠다.

  새로운 아이디를 만들면 순식간에 새로운 사람이 됐다. 중복되지 않는 아이디를 찾아 나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줬다. 그 이름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뭐가 됐든. 아주 깔끔하게. 그래서 그렇게 만들기를 반복했던 거였다. 처음부터 시작하면 뭐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무것도 변할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그랬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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