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건 없을지도

2018. 9. 30. 23:21에세이 하루한편



  연희동에 다녀왔다. 내가 태어난 나의 고향. 연희동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내 이름은 이연희가 될 뻔했다. 할아버지는 무심코 말했지만, 부모님이 옥편을 뒤져 다시 지었다고 했다. 유난히 조용한 동네에서 태어나 그런지 난 조용한 곳을 좋아했다. 다시 찾은 연희동이 반가운 이유도 그거다. 조용하기 때문에. 언제 가도 한적한 분위기를 품고 있는 곳이라 좋았다. 거기에 오후의 햇살까지 더해지면 더할 나위 없다. 햇살을 받으며 동네를 걸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 A와 늦은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고 가게를 구경했다. 그리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얘기했다. 우린 시시콜콜한 근황과 삶에 대한 고민을 넘나드는 대화를 나눴다. 항상 진지하다가 웃고, 깔깔 웃다 다시 입을 다물게 하는 생각을 나눴다. 공통적인 대화 주제는 이거였다. ‘우리는 잘살고 있는가.’ 잘 살고 싶으니 묻는 말이겠지만 나도 A도 모르겠다, 가 답이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는 A이거다!’ 하는 걸 찾고 싶다고 했다. 꼭 맞아서 확실한 느낌을 받는 뭔가를 찾고 싶은데 아직 그런 게 없다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나는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아마 나에게 딱 맞는 건 아마 없는 게 아닐까, 하고. 그래서 이 정도면 괜찮네.’라는 느낌을 받는 게 내가 하고 싶은 거고 좋아하는 게 아닐까, 라고. A는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대화는 계속 이어졌고 어느새 창밖에 해는 저물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니 따스한 오후는 사라지고 찬 바람이 불었다. 왠지 모를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9월의 마지막 날이고 내일은 10월의 첫날이었다. 날짜와 요일 감각이 사라진 지는 오래였다. 당장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크게 상관이 없는 날이 이어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우울했다. 또다시 나는 이대로,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라는 질문이 슬그머니 날 건드렸다. 그러다 문득 함께 나눈 대화에서처럼 어쩌면 좋은 인생이란, 잘 사는 인생이란 없는 게 아닐까 싶었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었다. 사실 인생이란 그럭저럭 살 만하네, 이렇게 살다 보니 괜찮은 점도 있네, 라는 말을 할 수 있으면 족한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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