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해도 (나름) 괜찮아

2018. 10. 2. 23:57에세이 하루한편



  집을 나섰다. 굳이 외출하지 않아도 됐는데 마음이 답답해서 걸어야 했다. 누가 눈치 주는 것도 아닌데 나 혼자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점심때 있었던 가족외식에 가지 않은 이후부터였다.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자리라 굳이 가지 않아도 될 자리였지만, 무엇보다 내가 일하지 않고 집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난 나름대로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하루 한 편 글쓰기 프로젝트 말고도 잡지 에세이에 투고할 글도 쓰고 있다. 가족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짜잔! 하며 잡지에 실린 글을 직접 보여주고 싶어 부러 얘기를 안 했다.

  집 근처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B에게 거는 전화 버튼을 눌렀다. 나 집을 나왔어, 하고 운을 뗐다. 지나가던 아저씨가 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흘끔 쳐다봤다. 오늘은 있지왠지 그런 날 있잖아마음이 좀 헛헛하네난 자꾸만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몰라 빙빙 돌려가며 하고 싶은 말을 찾았다. 걸음을 걸을수록 솔직해졌다.

  “왜 이렇게 해도 마음이 불편하고 저렇게 해도 마음이 불편할까.”

회사에 다니면 다니는 데로 불편하고, 쉬면 쉰대로 불편하다고 덧붙였다. B는 원래 다 그런 거라 했다. 이래도 불편, 저래도 불편할 거면 차라리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불편한 게 훨씬 낫지 않냐고 했다. ,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렇긴 하네, 하고 맞장구쳤다. 그래, 그러면 되지. 뭘 하든 난 완벽히 만족을 못 할 거고 마음은 불편할 거야. 당분간은 일정한 수입이 없어서 전전긍긍 할 테고 글 밥을 먹고 살 수 있을는지 고민하겠지. 그래, 그러겠지.

 

  공원에서 지하철역 부근으로 되돌아가 지하철을 탔다. 오늘 아침에 방 구하기 카페에서 본 집을 보고 싶어서. 세입자한테는 말을 안 하고 근처 분위기를 보러 간 거였다.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전세 4500주택이었다. 서울에 전세 4500이라니 이 정도면 전세대출을 받아도 부담이 없겠다 싶었다. 동네는 조용했다. 집의 장점으로 적어놓은 것처럼 정말 조용했다. 집을 찾아가는 길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군데군데 작은 가게들도 보여 동네가 더 돋보였다. 거리를 걸으며 가게 주인들과 인사를 하고 안면을 트는, 웃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도착한 집 근처 위치는 초등학교 정문 바로 앞이었다. 분명히 이 집처럼 조용한 집이 없다고 했는데. 오후 네 시가 넘은 시간에 도착한 터라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 그런 거겠지만, 분명 등하교 시간엔 시끌벅적하고도 남을 곳이었다. 현관문을 두드리거나 돌을 던져 창문에 던지진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가까운 집이었다. 로드뷰로 집 주변을 확인하고 왔지만, 막상 이렇게 직접 보니 집은 정말 신중하게 구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여긴 안 되겠다. 터덜터덜 걸었다. 독립의 꿈이 한 발 멀어지는 것 같았다.

 

  이왕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 해방촌이라도 걷자 싶어 지도를 켜고 무작정 걸었다. 철든 책방 에 가봐야겠다 싶어서였다. 해방촌에 가까워지자 따로 인도 난 곳이 없는 길이 나왔다. 도로엔 마을버스가 빵빵거리고 승용차가 달리는 길이었다. 가파른 길을 따라 20분 정도 걸었다. 익숙한 책방이 나와 반가운 마음에 들어갔다. 스토리지 북앤필름이었다. 마음에 드는 잡지를 사고 싶었지만, 가방은 무겁게 느껴져 짐을 늘리고 싶지 않았다. 사실 최근에 돈을 많이 쓴 게 맘에 걸렸다. 빈손으로 나왔다.

  철든 책방 문은 닫혀있었다. 열고 싶을 때만 여는 책방이었지, . 그래도 위치를 알아뒀으니 됐다 싶었다. 도저히 내려갈 힘이 없어 마을버스를 타고 근처 역으로 갔다. 교보문고를 간다고 하고 나온 길이었는데. 책 심부름도 있어 근처 서점이라도 가야 했다. 몸은 힘들어 본능적으로 집에 가고 있었다. 4호선과 6호선을 갈아타는 환승 통로에 지하철 서점이 있어 찾는 책이 있나 확인했다. 없었다. 아쉬운 대로 집 근처 서점 한 군데에 전화를 해봤다. 주인은 자기가 지금 밖인데 나중에 찾으면 안 되냐고 했다. 전화를 끊었다. 역에서 내려 마지막으로 다른 서점에 들어갔다. 문제집 이외에 책은 없었다. 결국 사지 못했다.

  다시 역 근처 공원으로 갔다. 주위는 어둑어둑해졌다. 땀이 마르기 시작하니 서늘한 바람이 불어 겉옷을 챙겨 입었다. 다리도 허리도 뻐근하지만 걸으니 좋았다. 짧은 여행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후암동을 갔다가 서점만 세 군데를 들르고 다시 집으로 왔다. 마음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난 또다시 손바닥 뒤집듯 바뀔 걸 안다. 내일 오후까지 이 느낌이 계속된다고는 말 못 하겠다. 그래도 별수 없다. 불편한 마음이 들면, 온전히 느끼자. 발 편한 운동화를 꺼내 다시 오래 걸을 준비를 하면 된다. 어디라도 가게 만드니 다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다. 불편해도, 괜찮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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