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타이밍인가?

2018. 10. 12. 22:34에세이 하루한편



  “인생은 타이밍이야.” 엄마가 말했다. 몇 달 전, 지방에 있는 큰 회사에 취직한 오빠의 전셋집을 구해준 걸 보고 말하는 거였다. 나도 독립할 거라고 계속 말했지만 적당한 때를 잡지 못해서 계속 미뤄지고 있고, 그럼 나에게도 독립 자금을 보태줄 거냐고 묻는 말에 대답한 말이기도 하다. 인생은 타이밍. 많이 들었던 말이다. 아마 보태준다고 해도 난 월세 집을 구하거나 전세대출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엄마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고 싶다고 했다. 오늘 아침, 아빠와 의견을 나눈 엄마는 마음을 굳힌 듯 보였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7주간 교육을 받고 시험을 치르는 일정이라고 했다. 5일을 꼬박 받아야 하니, 당장 할머니 댁에 가서 할머니를 볼 사람이 필요했다. 만만한 건 나였다. 겉으로 보기에 일 안 하고 도서관과 책방을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그럴만하다. 아직 글 쓰고 있다는 걸 알리지 않은 탓도 있다. 알리면 뭐 달라질까 싶지만. 엄마는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일주일에 세 번, 시간제 간병인이 가고 난 뒤 1시부터 할아버지가 오시는 4시 전까지 할머니 곁을 지키고 있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권유에 가까웠지만.

  난 잠을 못 자 비몽사몽인 채로 들었다. 수업은 12월부터 시작이니 2월까지 약 두 달, 어디 멀리 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자 부담이 됐다. . 이렇게 나의 독립은 또 미뤄지는구나. 급하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렇게 되다간 영영 못 하는 거 아닌가. 아니지, 그렇게 할 순 없지. 엄마의 뜻을 따랐다. 별수 있나. 엄마도 하고 싶은 거 해야지. 나는 집안 식구들 때문에 내린 선택이냐 물었지만, 아니라고 했다. 그래. 그럼 됐다. 무거운 마음이었다. 조금 전 수락한걸 조금 후회했다.

  타이밍. 인생은 타이밍. 2월 까지는 내가 준비하는 글을 모두 마무리 지어야겠다. 구체적으로 어떤 글인지 이곳에 적지 않았지만, 어제부터 시작한 글이 있다. 언제 완성될지 모르고 중간에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다 다시 적을지도. 어쨌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마무리할 마음으로 써 내려갈 거다. 우선 2월로 잡았다. 가족 아무도 모르는 내 은밀한 계획을 타이밍과 연결 지어 생각해도 되는 걸까. 아직 잘 모르겠다. 결과에 의해 판가름 나겠지만, 시도해 봤음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긴 싸움이 될 거다.

 

  또 하나의 일화. 노트북이 말썽이다. 이틀 전에 구매한 노트북, 나에게 만족의 의미를 되새겨준 물건은 좀 이상했다. 자꾸만 회색 줄이 그어진 화면이 1초 단위로 지나갔다. 아주 잠깐이어서 처음에 내가 뭘 잘못 봤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이상한 화면이 파박하고 지나가는 거였다. 오늘은 의심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글을 쓰다가 갑자기 일본어, 특수문자가 찍히는 경우도 있던 걸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참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바로 구매한 곳에 전화를 걸었다. 기기에 이상이 있으면 새 제품으로 교환하거나 환불이 가능하다고 했던 말을 믿고서. 다행히 환불이 가능하다고 했다. 본사로 전화를 해 먼저 제품 이상 검사를 받고선 교환, 환불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그냥 환불 해주겠다고 했다. 문제를 빨리 발견해서 다행이었다. 노트북과 태블릿 PC 겸용인 제품을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릴 용도로 마련하려고.

  문득 생각했다. 여기에도 타이밍이? 그림을 그리라는 뜻인가? 내 그림 실력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못 그린다.), 글 작업용으로 사양이 낮은 걸 살 것인지 다용도로 그림까지 그릴 제품을 구매할 것인지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그림일기도 연재하고 싶다는 생각이 예전부터 있었는데 아이패드를 사기에는 주머니 사정이 걱정돼 계속 미뤄뒀다. 예전에 인스타툰(인스타그램 웹툰의 줄임말) 그리기 수업도 들어서 내 캐릭터도 만들어 놓은 참이었다. 진짜 그리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난 어쩐지 이 모든 게 타이밍처럼 느껴진다.


  진짜 인생은 타이밍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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