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 일기 1) 아름다운 가게 물품 기증

2018. 8. 2. 23:44에세이 하루한편/미니멀 라아이프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할 물건들을 모으니 일곱 박스가 됐다. 대략 세보니 의류 58벌, 도서, CD 26개, 잡화(신발, 인형) 40개 정도 된다. 이렇게 많은 물건이 집 안 곳곳에 숨어있었다고 생각하니 좀 이상해진다. 사실 어떤 물건이 있는지조차 잊고 살았다면 그 물건은 필요 없는것이겠지? 근데 그런 물건들이 가만히 놓여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고 생각하니까, 집이 어떤 공간인지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이 사는 곳인지 사람이 사는 곳인지를 구분 하지 못하고 그냥 살아왔던 거다. 말 그대로 그냥.

  주인에게 쓰임 받지 못하는 장난감들의 이야기를 그린 토이 스토리가 생각났다. 나도 오늘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놀던 삼십여개의 인형들을 정리 했다. 모두 추억이 깃든 인형들이다. 박스를 쌓아 둔 쪽을 보면서 혹시 어두 컴컴한 박스 안에서 인형들이 우디와 버즈처럼 '이 곳을 탈출해야 돼!' 하며 계획을 짜진 않을까 상상 했다. 웃기지? 근데 마음 한편이 서글퍼진다. 옛날 기억들이 머릿속을 휙휙 지나가서. 한 때는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그런 친구들을 정리하는 이유는 나 보다 더 필요한 사람에게 가줬으면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인형 하나로도 행복했던 그 때 처럼, 누군가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제는 인형으로 행복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냐하면 또 그건 아니지만.ㅡ스티치와 양 인형은 차마 보내지 못했다ㅡ이제는 현재 추억이 깃든 물건만 갖고 있기로 했다. 지금과 추억은 어울리지 않는 말일지 모르지만,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물건을 비우고 온전한 나로 채우기'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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