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의 편

2019. 2. 2. 23:59에세이 하루한편/미니멀 라아이프

 

백화점에 갔다. 엄마 생일선물도 사고 공모전 상금으로 받은 상품권을 쓰려고 일부러 간 거였다. 상품권으로 선물을 산다면 딱 좋을 것 같아서 호기롭게 출발했으나 내 예상과 달랐다. 시계를 선물하고 싶어서 스와치 매장을 구경했지만, 시계가 30개 남짓 진열돼있을까 물건도 많이 없을뿐더러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무엇보다 5만 원 상품권으론 살 수 있는 게 아예 없었다. 내 돈을 보태서라도 사고 싶은 게 있었다면 지갑을 열었을 테지만 제품을 꼼꼼히 살펴봐도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엄마 말대로 카시오 시계를 사야 할까. 매장을 나왔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내가 갖고 싶었던 걸 찾아보기로 했다. 코르덴 치마나 청치마를 찾았으나 마땅히 보이지 않았다. 브랜드도, 물건도 이렇게 많은데 사고 싶은 옷이 없다니. 점점 힘이 빠졌다.

급한 처방으로 백미당에서 초코아이스크림을 먹고 힘을 내서 내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으려 했다. 그 사이 사람은 점점 더 많아졌다설 연휴 전에 쇼핑하러 한마음 한뜻으로 온 것 같았다. 사람도 물건도 많은 백화점 안을 돌아다니니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이렇게 어지러운 곳에 다시 오기 싫으니 상품권을 빨리 써버리자! 하지만 마음에 쏙 드는 게 없어서 결국 빈손으로 백화점을 나섰다. 두 시간 넘게 구경했으나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아이스크림 하나 먹은 게 다였다. 멀미가 났다. 물건에, 사람에 어지러워 찬바람을 좀 쐐야 정신이 돌아올 것 같아 역 한 정거장을 걸었다. 빽빽한 옷걸이에 걸린 옷들, ‘NEW’‘SALE’ 이라 적힌 빨간색 글자와 사람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친절한 응대를 하는 직원들 앞에서 자신의 요구를 큰 소리로 말하는 한 여자의 목소리를 잊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쉬니 정신이 돌아왔다. 내가 어디에 갔다 온 거지. 백화점 한 번 다녀온 게 이렇게 기운 빠질 일인가. 점점 더 사람과 물건이 북적이는 공간에 오래 있기가 힘들어진다. 사람이 살면서 아무것도 필요 없다면 백화점 같은 공간도 없었을 텐데. 온통 물건에 둘러싸인 곳과 집이 크게 다르지 않은 걸 보면 욕심이 얼마나 위험한지 느낀다. 꼭 필요한 것만 산다면 이렇게 어지럽진 않을 텐데. 욕심과 욕망을 이용하려는 기업과 뒤처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들, 쉽고 빠르게 변하는 시장 흐름 속에서 난 어디에 속할 것인지를 생각했다내가 할 수 있는 건 만족하는 거다. 항상 내 양쪽으로 잡고 있는 손을 봤다. 욕심과 만족. 그중에 만족의 손을 번쩍 들었다. 내게 주어진 상황,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에 만족할 줄 알자. 감사할 줄 알면 더 좋고. 앞으로도 누구의 손을 들지 고민하는 순간이 찾아오겠지만, 더 자주 만족의 편을 들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