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4. 21:52ㆍ에세이 하루한편/미니멀 라아이프
구매한 지 삼 년쯤 된 시계에 약을 갈았다. 멈춰서 더는 시침과 분침이 움직이지 않는 백 원짜리 동전 크기 만한 시계다. 줄도 낡아 교체하는 방법이 없을까 시계브랜드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지만, 따로 살 방법은 없어 보였다. 내가 구매한 모델을 찾아봤지만 없었다. 어쩌면 삼 년이 더 됐는지 모른다. 클로이(CLOI)라는 브랜드인데, 초침이 초록색 새싹 모양인 게 맘에 들어 샀다가 언제부턴가 차지 않았다. 약이 다 떨어져 움직이지 않았을 때부터였겠지. 얼마 동안 서랍 속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멈춰있는 시계에 숨이 붙으니 초록색 초침이 움직였다. 새싹도 일초에 한 번씩, 일정하게 움직이고. 귀를 가까이 대 째깍째깍 소리를 들었다. 내가 쓰던 물건을 다시 쓰게 되니 기분이 남달랐다.
이 시계를 차던 과거의 어느 날로 갑자기 돌아가기도 했다. 설인지 추석인지 명절에 가족들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과일을 먹었을 때였다. 내가 과일을 깎으려고 손목 위로 소매를 걷은 상태에서 누군가가 내 시계를 보고 말을 걸었고 그래서 ‘시계는 작은 게 좋더라고.’라고 대답했던 때가. 요즘은 큰 게 좋아 알이 크고 밴드가 넓은 시계도 몇 개 샀지만, 그땐 작은 시계가 좋았다. 정말 흔한 기억인데 갑자기 떠오른 게 신기했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은 건데. 까먹어도 별 이상 없을 만큼 쓸모없는 건데. 역시 물건엔 기억이 스며있는 게 맞아, 생각했다. 어떤 물건이든 각자의 기억을 만들어가고 있을 테였다. 모두 나와 얽힌 기억들을. 가끔은 오래된 물건이 좋을 때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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