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 일기 2) 마음 정돈

2018. 11. 9. 23:35에세이 하루한편/미니멀 라아이프



  잠을 못 자서 멍한 머리를 깨우려 아침에 일어나 집을 치웠다. 치워야만 했다. 다음 주에 거실과 주방에 장판을 새로 깔기로 했는데, 그게 엄마의 청소 욕구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치우자고, 버리자고 말해도 듣지 않더니 이제는 제대로 마음을 먹었는지 엄마는 내일 아침 일어나면 청소하는 거다? 먼저 말을 걸어 약속했다. 주방 쪽에 세워둔 수납장, 책장, 서랍장을 버렸다. 애물단지였던 가구들이 사라지니 속이 시원했다. 사진, 여행 가서 다녀온 기념품을 놓아둔 책장엔 본래 의도와는 달리 점점 이상한 물건들을 올려놨다. 여분의 치약 칫솔, 샴푸, 테이프, 화분 등. 그리고 그 옆에 둔 수납장엔 플라스틱 반찬통과 프라이팬을 쌓아두었다. 각종 물통과 빈 병들이 가득 찼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쓰시던 장이라 버리긴 아깝고 이사 오면서 집에 둘 곳이 없으니 우리 집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그걸 볼 때면 마음이 답답했다. 우리 집 식구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물건인 것 같아서.

  집엔 아직도 버려야 할 것들이 많다. 특히 아빠의 물건이. 언젠가 필요할 거라 생각하는 모임 회원들의 명단과 전화번호, 공과금 영수증과 연극 티켓, 기도문과 찬송가 복사용지들이 빼곡했다. 엄마도 나도 아빠의 물건이 가득 찬 창고 방에 들어가면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오늘은 책장을 정리하다 털실로 만든 엽기토끼를 발견했다. 밑그림이 그려진 철사 망에다가 5cm 정도의 털실을 고리로 하나씩 꿰는 방식이었다. 학교 수업 때 그걸 했었던 걸 보면 꽤 유명했었는데. 그걸 뭐라고 했더라,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랑 같이 만들었잖아, 그거. 엄마가 말했다. 추억에 잠기는 것도 잠시, 버리려고 하자 아빠는 말렸다. 추억이 든 걸 왜 버리냐며. 액자에 끼워 둔 걸 보니 그땐 꽤 아꼈던 물건이었구나 싶었다. 아빠 마음도 이해하지만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물건은 그거 말고도 많다. 엽기토끼는 이만 안녕이다. 또 하나를 버렸다.


  물건을 정리하는 건 내 생각과 잡념을 정리하는 것과도 같다. 매일 아침 청소를 하고 내 공간을 정돈하는 것도 같은 의미다. 나도 조금씩 습관을 들이고 있다. 머리를 말리고 나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을 쓸고, 버리고 자기. 매일 아침 매트리스와 이불 개어 한쪽에다 놓기. 책상 위나 피아노 위에 물건을 올려두지 말고 바로바로 제 자리를 찾아주기. 그렇게 공간을 정돈하면 내 마음도 정돈된다. 마음이 상쾌해지고 집중이 잘 된다. 그래서 집에 쓸데없는 생각이 자리할 공간을 치우는 게 반갑다. 최소한의 삶은 누군가가 정해주는 게 아니다. ‘최소한이라는 개념 자체가 상대적이니까. 나에게 맞는, 내 마음을 울릴 수 있는 비움을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 에코백이나 동전 지갑, 파우치, 연필을 보면 눈이 돌아가는 난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의식하고 있다. 물건이 나와 영원히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서랍 어딘가에서 가만히 잠들어있을 내 물건들을. 그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진짜 필요한지 묻게 된다.

  욕심이 생길 때마다 떠올린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을. 비싸고 좋은 걸 사지 않아도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을. 그들은 아름다워 보인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비움의 즐거움을 더 느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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