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 즐거운, 마살라 짜이

2018. 10. 23. 22:08에세이 하루한편/다함께 차차차!



  어제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 먹은 걸 후회했다. 카페인 함량:116mg고카페인이렇게 적혀있는 걸 무시한 탓이다. 카페인이 얼마나 많은 건지 가늠도 안가 덥석 집어 들었는데 새벽 두 시가 돼도 잠이 안 와 이불 안에서 내가 다시 커피 마시나 봐라. 이를 갈았다. 가슴에 손을 대보니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방 불을 켜고 책장으로 가, 책을 꺼내 읽고 수첩에 메모하고 그림을 그렸다. 몸은 졸린 데 머리는 깨어 있었다. 몸이 오작동하는 느낌이랄까. 이상했다. 따로 노는 것 같았다. 더 집중도 안 돼서 핸드폰으로 쓸데없는 기사를 보다가 잤다. 시계를 보니 여섯 시였다. 위층에선 이제 막 일어났는지 물줄기 소리와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났다. 닥스훈트 강아지 금복이가 뛰어다니는 소리까지. 타닥타닥, 발톱이 장판에 닿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는 일어나는 데 나는 이제 잘 시간이네. 암막 커튼을 치고 있으니 방안은 어두웠다. 네 시간을 잤다.

  머리는 무겁고 목은 건조했다. 배가 고파 속이 쓰려 꾸르륵 소리가 났고 어지러웠다. 잠 안 오는 새벽만큼 길고 지루한 건 없을 거다. 몸은 지쳐 쓰러질 것 같은데 정신은 또렷한 그 느낌이 왠지 섬뜩하게 느껴졌다. 잠에서 깬 가족들이 활동하는 소리에 깼다. 잠귀가 밝아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배가 아파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오늘 하루는 망했네, 말이 절로 나왔다. 점심 먹기 전까지 내리 잤으면 몸 상태가 좀 나았을 텐데. 새벽에 읽은 김영하 작가의 단편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 나온 아침부터 마음이 어수선하면 하루를 그냥 공치는 게 작가의 일이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소설이라 좋아하는데, 오늘은 저 문장에 꽂혔다. 사실 나도 작가인 척 해보고 싶어서 적어봤다. 점심을 먹었다. 뭐라도 들어가니 기운이 났다. 찌뿌둥한 몸 때문에 짜이가 당겼다. 그동안 미뤄왔던 짜이 끓이기를 시도했다.

 

오늘의 짜이 끓이는 법 - 넉넉하게!

 

1) 300mL를 붓는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홍차 잎을 넣는다. 큰 수저 한 숟가락 반 정도. 물양에 따라 조절한다.

2) 3분 정도 끓여 진하게 우러나오면 우유 400mL를 붓는다.

3) 이태원에서 산 향신료 소두구, 계피, 정향 등을 넣어준다.

4) 한소끔 끓어 오르면 꿀을 첨가한다.

5) 망에 걸러 컵에 따르면 완성!

(그림판으로 그린 향신료들)


  맛과 향 모두 좋았다. 이렇게 무작정 끓여도 맛있는 짜이라니. 한 모금 마시자마자 캬, 소리가 절로 났다. 찻잎을 적게 넣어 연했지만 깊은 맛이 났다. 계속 홀짝대니 몸에 열이 올랐다. 금세 피곤함이 가셨다. 마치 온탕에 푹 담그고 있는 기분이었다. 몸 구석구석이 뜨끈해지는 걸 느끼면 어느새 기분도 좋아졌다. 짜이는 역시 짜이다. 한결 개운했다. 앞에 적은 소설 속 주인공처럼 매일 차를 마시며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하루 한 잔, 기분 따라 먹고 싶은 차를 내려 옆에 두고 적어 내려가는 글. 머리를 끙끙 싸매겠지만 생각만 해도 좋다. 글로 밥을 벌어 먹고산다는 건 먼 미래 같으니 우선은 짜이를 내 입맛에 맞게 끓이는 법부터 알아야겠다. 다 먹고 나서 밀크티 끓이는 법에 대한 영상을 찾아봤다. 그러고 보니 글로만 찾아봤지 영상 볼 생각은 못 했네. 방법은 다양했다. 끓는 물에 향신료를 먼저 넣고 차를 우리는 법(그럼 향이 더 진하게 나 좋다고 했다), 차를 우리고 차가운 우유와 설탕을 넣어 냉침 하는 법까지. 당도를 조절하기 위해 각설탕을 넣기도 하고 비정제 설탕을 넣기도 했다. 우유와 설탕을 섞어 연유를 만드는 법도. 나처럼 꿀을 넣는 사람도 있었다. 각자의 취향 따라 만들어 먹는 재미가 있는 차였다. 한 번씩 다 따라 해 볼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들뜬다.

  오후 열 시를 향해 달려가는 시간, 지금도 한잔하고 싶은데 보나 마나 못 잘 게 뻔해 참기로 한다. 얼른 내일이 와서 또 먹었으면 좋겠다. 마시는 순간도, 기다리는 것도 즐거운 짜이다.


 

(내 반려식물과 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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