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의 날

2018. 11. 29. 23:30에세이 하루한편/다함께 차차차!


말차로 시작했다. 마침 어제부터 말차가 너무 먹고 싶어 노래를 부르던 중이었다. 그럭저럭 먹을 만한(하지만 두 번은 가지 않을 맛인) 말차라테를 마시고 나서 카페를 나왔다. 네이버 후기가 많다고 다 맛있는 곳은 아니었다. 매번 느끼지만, 오늘도 또 당해버렸네. 맛깔난 말차는 또 어디서 맛볼 수 있는 건지 아쉬움이 가득한 걸음을 옮겼다. 입안이 텁텁해질 정도로 진한 가루와 고소함이 살아있는 말차를 먹고 싶다! 으아! 를 외치며 카페 근처 디저트를 파는 가게에 들어갔다. 유리 상자 안에 정갈하게 진열된 한 입 거리 디저트들보다 눈에 띈 건 호지차 밀크티였다.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주인은 녹차를 우린 것에 우유를 섞은 거라고 답했다. 홍차를 우린 밀크티는 먹어봤어도 녹차를 우려 우유를 섞어 먹는다니 맛이 궁금했다. B가 먹어보자며 지갑을 열었다. 오호? 알고 먹지 않으면 녹차라는 걸 모를 정도였다.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녹차 특유의 씁쓸하고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주는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한 오묘한 맛이었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저녁은 뭘 먹을까 돌아다니던 가게 앞 메뉴판에서 명란 오차즈케를 발견했다. 녹차를 그렇게 먹어놓고도 까먹고 나, 이거 먹어보고 싶었던 건데! 하며 들어간 거다. 오차즈케는 녹차에 밥을 말아 먹는 일본 요리로 내가 주문한 건 명란을 겉에만 살짝 익힌 것이 밥 위에 살포시 올려져 있었다. 밥그릇 옆에는 녹차가 담긴 티포트가 함께 나왔다. 밥의 반 정도가 잠기게 차를 부어 먹은 뒤 다시 나머지를 부어 먹으라 했다. 쪽파와 김, 깨가 버무려진 밥에 녹차를 부으니 고소했다. 밥에 참기름을 뿌려 먹으면 입안에 퍼지는 향처럼. , 이것이 바로 오차즈케구나! 내 입맛에 맞았다. 볶은 김치나 식초에 절인 고추와 함께 먹으니 간이 딱 맞았다. 짭짤한 명란과 밥을 한 숟갈 떠 같이 먹는 재미도 있었다. 집에서 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간단해 보였다.

생각해보니 말차, 호지차 밀크티, 오차즈케 모두 녹차로 만든 거였다. 녹차는 몸을 차게 해 하루에 한 잔만 먹는 걸 권장한다던데 오늘은 흡입을 한 수준이었다. 이렇게 녹차를 많이 마신 날은 없었는데. 근데 녹차가 이렇게 재밌는 차였나? 다시 생각하게 됐다. 다양하게 마시고 먹는 게 즐거웠다. 붙임성 좋은 차랄까. 차로 마시든 밥을 말아 먹든 입안을 싹 훑고 지나가는 씁쓸한 향과 텁텁함이 좋아 찾게 된다. 겨울엔 좀 자제해야겠지만, 오늘은 본능을 따라가다 보니 녹차의 날이 돼버렸다. 나쁘지 않다. 녹차의 날! 언제 또 녹차 파티를 해야겠다. 시작은 가볍게 오차즈케로 하는 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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