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잘 안 들려

2018. 11. 25. 23:47에세이 하루한편



  KT 통신 장애가 완벽히 복구되려면 일주일이 걸린다는 기사를 봤다. 오늘 오후 2시에 글을 올렸다시피 인터넷은 돌아왔는데 문자와 전화는 아직 불안정하다. 또 우리 집에서만 벗어나면 인터넷 신호가 안 잡히고 통화가 30초 이상 안 된다거나 문자 전송이 불안정하다거나 하는 문제가 있다. 불편했다. 그래도 티브이까지 안 나왔으면 더 심심했을 텐데, 티브이는 나와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며 점심을 먹었다. 인터넷이 안 됐던 하루 하고도 몇 시간 동안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나를 관찰했지만, 딱히 없었다. 아무것도 할 게 없어 책 한 권을 뚝딱 읽고 소설 수정에 집중이 잘 돼서 마음에 쏙 드는 글로 반질반질 윤이 나게 했다든지 그런 일도 없었다. 책도 적당히 읽고, 글도 적당히 고쳤다.

  뭐 하나 새로운 일이 생겼다면 전화다. 산책하던 도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070으로 시작되는 번호면 바로 끊어버리는데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라 받았다. 벨 소리 모드로 해놓으면 소리가 재촉하는 느낌 때문에 받게 되는데 오늘도 그랬다. 띠디디딩 벨 소리가 울리자 전화를 바로 받아버렸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연락 안 한 지 일 년이 넘은 친구의 목소리였다. 우리는 한 계절을 가까이 지내고 몇 달, 길게는 일 년을 넘게 연락을 안 하다가 다시 만나는 걸 반복하는 이상한 사이였다. 내가 친구에게 서운한 게 있었으니 연락이 자연스럽게 끊어졌다고 생각했다. 근데 또다시 불쑥, 걸어오는 전화가 야속했다. 어디 있다가 이제 연락한 거냐고 말했다. 그 친구와 연락이 끊어진 시기가 떠올랐다. 마음이 힘들었던 때였다.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반가운 것 같은데 반갑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다시 만나 말 못 한 이야기를 나눈다 한들, 우리의 관계가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평소 대화 중 농담이 반이었던 우리였기에 친구는 KT 화재 피해자구나, 하고 말하며 통신사가 SKT인데 거짓말하는 게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전화하는 도중 자꾸만 안 들리고 끊어져 세 번을 다시 통화했다. 문자로 하자며 전송 실패됐다는 문자를 재전송, 재재전송 하며 보냈다. 답장이 왔다. 더 보내진 않았다. 보내고 싶지 않았다. 친구는 통신 화재 때문에 자신의 문자를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통신선 복구를 핑계로 일주일 동안은 연락이 잘 안 되는 척할 수 있는 셈이었다. 다시 연락이 올지 안 올지는 모르지만. 그때쯤이면 복잡한 마음을 정리할 만큼의 시간은 되겠지. 타이밍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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