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순환

2018. 11. 27. 23:59에세이 하루한편



드디어 미루던 병원에 갔다. 허리가 욱신거리고 당기는 통증 때문에 가야지, 가야지 입으로 노래를 부르던 걸 오늘 오전에 다녀왔다. 이상은 없다고 했다. 엑스레이를 찍었지만 특별한 문제는 없어 더 검사는 권유하지 않았다. 통증이 얼마나 됐는지를 묻자 나는 한 달 정도라고 답했다. 의사 선생님은 살짝 내려쓴 안경사이로 눈을 번뜩이며 그렇게 오래됐으면 진작 왔어야 했다고 꾸중했다. 그 정도 된 거 보면 통증이 심하진 않았나 보네요, 아팠다 괜찮기를 반복했으니까 그렇게 뒀겠지. 안티푸라민을 발랐다는 걸 이야기하려다 말았다. 바로 진찰대에 누워보라는 말이 떨어져서. 발을 올렸다 내렸다 굽히며 확인했다. 엑스레이 사진 찍은 걸 보여줬다. 흰색과 검은색으로 된 내 허리뼈와 고관절을 보니 저게 내 몸을 지탱하고 있는 뼈들이군,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은 뼈 하나하나를 나와 같이 보자며 설명했다.

척추 1번 뼈 좋고, 2번 뼈 좋고, 3번 뼈 좋죠, 4번 뼈도 좋고. 5번 좋지요

마우스로 척추와 고관절 뼈 모양에 따라 직선과 곡선을 그리며 모양과 상태가 좋아 보인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도 날 지탱하고 있을 뼈에 대한 고마움이 들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왼쪽으로 돌아누워 찍은 사진을 보고도 말했다. , 뒤쪽도 봐야지. 좋고, 좋고, 좋고. 또다시 마우스가 내 뼈 위에서 춤췄다. 책상 위 뼈 모형을 들어 디스크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뼈와 뼈 사이를 채우고 있는 디스크라는 쿠션이 1번보다 2, 2번보다 3, 이렇게 갈수록 넓어지면 좋은데 지금 환자분 같은 경우는 넓죠? 괜찮아 보이고요.”

계속 좋다는 말만 듣고 나니 좀 무안해졌다. 안도감이 들었지만, 한 달 동안 날 괴롭히던 통증에 대한 답은 얻지 못한 채 좋고, 좋고, 좋고라니. 특별한 이상은 없었으나 통증이 심하면 약을 처방해주겠다고 했지만, 물리치료를 하겠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예전에도 무릎이 아파 갔던 병원에서 오늘처럼 온통 좋다는 내용만 듣고 왔던 기억이 났다. 그때도 물리치료를 받았었는데. 허리 물리치료는 처음이었다. 40분이었는데 찜질, 전기, 초음파 치료로 구성돼있다. 가장 긴 건 찜질인데 잘못하면 화상을 입을 수 있대서 뜨거워질 때마다 벨을 눌러야 한다는 의지만 없었다면 잠들 정도로 몽롱했다. 선잠이 드는 그 느낌을 느낄수록 정신이 아득해졌다. 치료를 다 끝내고 집에 와서 점심을 먹어도 가시지 않았다. 물리치료는 정신을 치료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3시가 되어 겨우 책상 앞에 앉아 글을 고치기 시작했다. 카페인 없이 물리치료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건 힘들어 보인다. 다음에 갈 때는 밀크티나 커피 우유를 마셔야겠다. 글쓰기는 허리를 위협하고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으면 정신이 몽롱해지고, 간신히 깨 다시 또 글을 써 허리가 아파지는 이 순환이 좀 이상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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