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생일이 막 지나가고

2018. 12. 8. 00:10에세이 하루한편


아빠 생일이라 감자 미역국을 끓였다. 엄마의 빈자리 대신 내가 요리를 한 거다. 미역을 불려놓고 감자 껍질을 깎으며 생각했다. 아빠한테 끓여주는 미역국은 처음이라고. 라디오를 틀었다. 영화음악을 틀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음악이 흘러나왔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나왔다. ,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구나. 진짜 겨울이네. 아빠의 생일은 겨울이라는 것만 기억한다. 아빠는 음력생일을 챙기는지라 주민등록상 생일인 1125일이 아니라 음력 111일이다. 음력으로 생일을 챙길 수 있다는 건 가족들 때문에 처음 안 사실이다. 가족 대부분이 음력을 챙기곤 하니까. 헷갈리게 굳이 음력으로. 그래서 매번 생일 직전에 알게 된다.

할머니 댁에 갔다. 침대에 누워계시는 할머니에게 오늘 아빠 생일이니까 생일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해주시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아빠를 출산했을 때의 기억을 꺼내 들려주었다. 아기가 나오려고 하는데 세 들어 사는 집에서 아기를 못 나게 해 셋째 할머니 집으로 급히 갔고, 가자마자 아기가 나와 산파를 불렀다는 내용이었다.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어졌다. 눈가가 촉촉해지다가 마르길 반복했다. 어째서 할머니는 그때의 기억은 잊지 않는 걸까. 곧이어 온 아빠에게 할머니는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잊지 않고 전했다. 방금 밥을 먹었는지 반찬은 무엇이었는지를 금세 잊고 마는 할머니가. 네 생일인데 내가 이렇게 아파서 누워있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하루가 저문다. 생각해보니 내가 끓인 미역국을 아빠와 내가 먹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드셨다. 이런 날은 아마 없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생일을 온종일 같이 보내고 점심과 저녁을 먹는 날은. 그리고 아빠가 태어난 날, 탄생의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듣는 날도. 그때도 이렇게 추웠을까. 오늘은 급격히 온도가 내려간 날이었다. 옷장에서 롱 패딩을 꺼낼 만큼 추웠다. 영하 8도라나.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던 그 시절을 상상해본다. 60년 전으로 돌아가 할머니가 20대고 아빠는 갓난아기였을 시절을. 몇 살까지 생일파티를 해주었을까.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로만 넘어간 생일은 언제부터였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여기까지 쓰다 보니 12시가 넘었다. 생일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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