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완벽주의자

2019. 1. 6. 22:25글쓰기 우당탕탕/나만의 책만들기


  포토샵의 자도 모르는 내가 책 표지 목업 파일을 만들었다. 목업이란 것도 난생처음 들어봤다. 안지 딱 이틀 됐다. 아마 독립 출판을 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단어일 거다. 그 작업을 내 손으로 한 거다. 그 험난한 일을 하게 된 건 책방 입고 공지를 읽는 도중, 목업 파일을 보내달라는 문구를 봤기 때문이다. 목업? 목업이 뭐지? 한글 같은 단어는 사실 영어였다. ‘mock up.’ 실물 모형 또는 발음대로 목업이라 부른다. 실물 크기의 모형을 만드는 작업을 뜻한다. 그러니까 책을 실물처럼 보이게 만드는 3D 작업이었다. 포토샵 체험판을 다운받았다. 인터넷에서 무료 책 표지 목업 파일을 다운 받아 열었다. 물음표의 연속은 그때부터였다.

  기본적인 거라도 익히자며 이것저것 막 눌러봤다. 책 표지 정면이 보이는 예시 파일이 떴다. 내 책 표지를 끌어다 넣었다. 크기가 안 맞았다. 오른쪽이나 왼쪽 귀퉁이를 열심히 늘려 테두리에 맞췄다. 중앙에 있는 부분을 잡고 늘리면 높이까지 같이 작아졌다가 커졌다. 폭이 맞으면 높이가 안 맞고 높이를 맞추면 폭이 안 맞았다. 왜 안 되는 거지 이거. 영문도 모른 채 그 짓을 반복했다.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내 책 표지 밑에는 검은색 실선이 있는데 이걸 자르면 크기가 딱 맞았다. 왜 그런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근데 그 선이 없으면 표지가 아예 달라지는 거였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돼서 자포자기 상태로 작업한 파일을 JPG로 뽑았다. 아니, 실물이랑 더 다르잖아? 실물이랑 비슷하게 만들려고 하는 작업인데 오히려 실물과 더 달라졌다. 이게 무슨 일이람. 너무 지쳤다. 나머지는 내일 해야겠다고 생각한 뒤 양치만 하고 이불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잠이 안 왔다. 아무래도 카페 라테를 마신 탓인 것 같았다. 몸이랑 정신 좀 깨우려고 마신 커피에 아직도 깨어있는 중이었다(오후 4시 넘어서 마신 커피에 이렇게 속수무책이다). 몸은 피곤해 죽겠는데 머리가 활발히 움직였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왜 내 책을 거절하는 거지. 잡다한 생각이 자꾸만 스쳤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다시 포토샵 파일을 열었다. 왜 유튜브 영상을 찾아볼 생각을 안 했을까. 머리가 깨어있긴 하는데 제멋대로여서 이 생각밖에 안 들었다. , 도대체 왜 안 되는 거야. 뭘 누르면 될 것 같은데블로그 설명 글만 보고 그렇게 레이어와 도구 모음에 있는 온갖 버튼을 다 눌렀다. 어떤 원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나왔다. 됐다! 드디어 됐어! 만세를 불렀다. 시간을 보니 6시였다. 밤을 새웠다.

  꽤 괜찮게 나왔군. 한숨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또 안 올까 봐 영화 <타이타닉>15분 정도 보고 잤다. 불을 끄고 눈을 감고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린 다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책 생각은 안 하는 거야. 타이타닉 생각을 하자. 타이타닉은 <노트북>이랑 인물 설정이 비슷한데, 난 타이타닉이 더 좋단 말이지특히 로즈가 목걸이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제일 마음에 들어…… 눈을 떠보니 오전 1133분이었다. 누군가 내 몸을 이불빨래 하듯이 발로 푹푹 밟은 것처럼 여기저기 욱신거렸다. 속도 쓰리고 손에 힘도 없는 것 같았다. 밥을 먹고 다시 컴퓨터를 켰다.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놓친 게 있었다. 배경색 넣는 걸 까먹었다. 그렇게 이것저것 만지다 보니 오후 6시였다. 주말의 절반이 막 지나있었다. 새로운 파일을 첨부해 책방에 입고 메일을 보냈다. 스토리지 북앤필름에 올라가 있는 사진을 수정해달라고 메일도 보냈다.

  

  목업 때문에 하루가 통으로 날아갔다. 사서 고생하는 스타일에 잘 안 돼도 내 힘으로 어떻게든 해보려는 똥고집 때문이다. 그리고 난 허술한 완벽주의자란 걸 깨달았다. 놓치는 건 많은데 내 마음에 쏙 들지 않으면 마음이 싱숭생숭한 피곤한 스타일이란 걸. 그래서 마음에 들 때까지 끝까지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이란 걸. 목업 때문에 나에 대해서 하나 배웠다. 독립 출판을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 또 하나가 생긴 셈이다. 역시 책은 스승이다.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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