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 약한 망각의 동물

2019. 1. 22. 23:59에세이 하루한편

 

처음으로 비엔나커피(Vienna Coffee)를 마셨다. 카페에서 일할 때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비엔나커피를. 무슨 바람인지 안 먹어봤던 걸 먹고 싶었다. 그동안 수없이 말했듯이 난 커피를 잘 못 마시는 편인데, 오늘만큼은 먹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어제 하루를 멍하니 보냈다는 생각 때문에 잠자리에 들기 전부터 생각했다. 또렷한 정신으로 하루를 살자고. 점심을 먹고 바로 카페에 갔다. 노트북과 책 한 권을 챙기고.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비엔나커피의 원래 이름은 아인 슈페너(Einspanner Coffee)란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고 그 위에 휘핑크림을 얹은 건데 사진에서 본 것처럼 먹음직스러웠다. 아메리카노에 크림, 그 위에 설탕인지 견과류 가루까지 솔솔 뿌렸다. 크림과 커피를 동시에 먹게 죽 들이켰다. 달고 쓰고 담백했다가 또다시 달고 쓰고 담백하기를 반복하는 맛이었다.

난 사실 커피를 무슨 맛으로 먹는지 잘 모르는 사람 중 한 명이다. 향은 좋은데 맛은 잘 모르겠다. 쓰다. 쓰면서 쓰다. 그냥 쓰다. 말차라테도 많이 마시면 어지러워하는 사람인데 커피를 즐길 리 없다. 배가 아프기도 하고. 그래서 크림 맛으로 먹었다. 먹을수록 커피가 조금 시고 특이한 향이 난다는 게 느껴졌다. 신기했다. 먹다 보니 술술 들어갔다. 한 입 두 입 먹다 보니 금방 동이 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슬슬 반응이 왔다. 배가 부글부글 끓고 팽만감이 들었다. 화장실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물을 계속 마시면서 글을 마무리하고 책을 읽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으아, 배가 아팠다. 화장실을 몇 번 더 갔다. 역시는 역시다. 나랑 커피는 상극이다. 짧았던 행복이었지만 후폭풍이 너무 컸다. 돈 내고 아파지고 싶진 않으니 커피는 당분간 마시지 말아야겠다. 다시 밀크티와 말차라테로 돌아가야지.

가끔은 안 하던 것도 하고 안 먹던 것도 먹어보는 게 소소한 즐거움인데. 무리해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마련이니 난 또다시 커피를 마시겠지. 그리고 쓰린 배를 부여잡고 후회하겠지. , 난 정말 망각의 동물이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난생처음 비엔나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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