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23. 23:52ㆍ에세이 하루한편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한 뒤 창문을 열었다. 내 방 창문과 베란다 창문 모두. 벌써 목이 칼칼했다. 나쁨 수준이 맞나보다. 몸이 알려준다. 문을 닫았다. 아침 겸 점심으로 버섯과 마늘을, 밥엔 참치를 볶아 먹었다. 실내에 있어도 미세먼지를 피할 수 없다는 기사를 본 게 떠올랐다. 특히 굽는 요리를 하면 급격히 올라간다고 했다. 볶는 요리지만 또다시 창문을 열고 환풍기를 틀었다. 바쁘다 바빠. 뭔가를 정리하고 싶어질 때면 청소를 하거나 요리를 하는데 오늘은 특히 더 그랬다. 손에 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맨날 그 얘기가 그 얘기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고민은 끝이 나지 않는 것 같다.
설거지했다. 그리고 또 뭘 할까. 저녁때 먹을 파스타를 위해 토마토를 삶았다. 토마토소스를 직접 만들기 위해서였다. 토마토 5개를 끓는 물에 퐁당 넣고 마늘도 넉넉하게 썰었다. 익은 토마토를 꺼내 껍질을 벗기고 다졌다. 각각 따로 반찬통에 담아뒀다. 파스타를 맛있게 먹으려면 피클이 있어야지. 전기밥솥 옆에 말라가는 무 반쪽을 네모나게 썰었다. 당근도 꺼내서 껍질을 사각사각 벗기고 잘랐다. 유리병이 없으니 길쭉한 플라스틱 통 두 개를 꺼내 담았다. 이제 남은 건 소스. 식초, 물, 설탕을 1:1:1 비율로 섞은 뒤 팔팔 끓였다. 그리고 부었다. 식초가 동이 났다. 온 집안에 진동하는 식초 냄새를 맡고선 또다시 환기를 시켰다.
산책하러 다녀오고 가방을 빤 뒤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온종일 바빴을 엄마에게 만들어줬다. 간이 싱거워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난 왜 이렇게 간을 싱겁게 하는 걸까. 점심때 먹었던 마늘 버섯볶음은 끝내주게 맛있었는데. 오늘 담근 피클도 선보였다. 그릇에 따로 담으려 뚜껑을 열 때부터 식초 향이 강해서 헛기침이 나올 정도였다. 맛도 그랬다. 식초 향, 식초 맛. 엄마가 그거 두 배 식초야, 말했다. 신맛이 두 배로 강하다는 걸까? 저녁을 다 먹고 피클 통에 물을 조금 부었다. 맛있어져라. 맛없으면 이거 다 누가 먹니. 얘기하면서. 문득 식초라는 단어가 좀 귀엽게 느껴졌다. 시큼해서 기침을 유발하지만.
식초 같은 글을 쓰면 어떨까. 그럼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어디서나 냄새를 풍겨서 눈에 띄고, 없으면 심심한 그런 글. 그런 글을 쓴다면 여기저기서 찾지 않을까. 적당한 만큼 넣으면 환상의 감칠맛을 내는 것처럼. 적재적소에 필요한 단어와 적확한 표현을 사용하는 문장을 쓴다면. 그때는 잘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게 될까. 내 생각엔 저 고민이 끝나는 날은 아마 없을 것 같다. 내가 로또에 당첨돼서 벼락부자가 되지 않는 이상. 쓸 돈이 넘쳐나도 고민은 계속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계속해야 할 고민이라면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나에게 말한다. 지금은 그냥 이렇게 살고 있다고. 고민이 계속되면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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