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떨려서 늦은 글입니다

2019. 1. 27. 00:03에세이 하루한편


점심을 먹고 나른한 기운을 떨치려 카페에 갔다. 사실 아인슈페너를 먹고 싶어서 간 거였다. 내 생에 두 번째 비엔나커피! 아예 아이스로만 주문을 받는 곳이 있는데 오늘 간 곳은 둘 다 가능했다. 사장님에게 뭐가 더 맛있느냐고 물었다. 전 따뜻한 걸 더 좋아해요. 저번엔 차갑게 먹었으니 따뜻하게 주문했다. 사장님에 말에 마음이 기울어서. 결론은 별로였다. 잔뜩 올린 크림이 금방 녹아서 풀어졌다. 컵을 타고 흐를 정도였다. 이거 원래 이런 건가. 얼른 크림을 빨아먹었다. . 상상했던 맛이 아닌데. 마치 토마토를 차갑게만 먹다가 익혀 먹었을 때의 느낌이랄까. 맹물에 익힌 토마토 말이다. ? 이게 아닌데? 이런 느낌이었다.

녹은 크림이 컵을 타고 줄줄 흘러 손에도 묻고 책상에도 묻으니 사진 찍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그래도 크림을 몇 번 먹으니 커피와 같이 넘길 수 있었다. 맛도 그저 그랬다. 사진 찍고 싶은 욕구가 더 사라졌다. 계속 먹으니 크림은 사라지고 커피 맛이 더 진해졌다. 쓰다 써. 잔뜩 남은 아메리카노가 넘어가질 않았다. 여긴 왜 이렇게 양이 많은 거야. 두 시간 동안 4분의 1 정도밖에 못 먹었다.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남은 걸 들고 왔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맛있었다면 그대로 비엔나커피 투어를 시작했을 텐데. 무엇보다 오후 1149분인 지금까지 심장이 너무 뛰었다. 당분간은 진짜 못 먹겠다. 비상이다. 지금은 5단계 상태다.

카페인 때문에 내 몸이 변하는 단계가 있다. 뒤로 갈수록 힘들어진다. 1단계, 배가 부글부글 끓음. 2단계, 화장실을 가야 함. 3단계, 어지러움. 각성 효과 때문인지 자꾸 뭔가를 하려고 함. 4단계, 심장이 빨리 뜀. 5단계, 몸에 힘이 없어짐. 손이 미세하게 떨림. 지금은 5단계다. 힘이 없어지는 중이다. 오늘 먹은 커피가 맛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차라리 잘 됐다. 5단계까진 오랜만에 온 거라 크게 깨달았다. 커피는 한 달에 한 번만 마시자. 될 수 있으면 안 먹는 거로 하고. 다시 차로 돌아가야겠다. 마침 허브차도 다 떨어져 가는데 주문해야지. 카페인에 깨갱하는 나는 오늘도 다짐을 하고 긴 새벽을 보낼 예정이다. 이 바보 같은 망각의 동물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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