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처럼

2019. 1. 29. 23:51에세이 하루한편

 

할머니를 뵈러 갔다. 요양원에 들어간 지 나흘 만에 일반 병실로 옮긴 상태였다. 폐에 물이 차고 복수가 차 세 통을 빼냈단다. 그래서 그런지 숨이 찬 기색 없이 가만히 침대에 누워계셨다. 오후 740분이 넘은 시간이었다. 할머니! 부르자 눈을 천천히 떴다. 할머니, 저 누구예요. 단골 질문을 했다. 막 잠에서 깬 얼굴이었다. 총기 없고 초점 없는 눈동자로 물끄러미 어딘가를 응시했다. 탁한 회색빛 하늘 같은 눈동자였다. 보석 같기도 했다. 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다시 한번 물어봤지만 내 이름을 말하지 못했다. 그 눈으로 날 알아봐 준다면 좋을 텐데. 날 정말 잊어버린 걸까. 더는 말을 걸 수 없었다.

이불을 걷어 할머니 손을 만져봤다. 나무토막 같은 팔이 보였다. 앙상한 뼈 위에 살가죽이 간신히 붙어있는 것 같았다. 못 본 사이 더 마른 모습이었다. 할머니, 식사하셨어요? 꼭 하셔야 해요. 안 그러면 더 힘드셔. 할머니는 무어라고 쉰 소리를 냈지만 내가 알아듣지 못했다. , 세이, 세이. 또다시 세, 세이. 바람 빠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 보여 더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또 올게요, 인사를 했다. 간병인 할머니에게도 인사를 했다. 60대 할머니가 80대 할머니를 보살피고 있는 거였다. 정정해 보이셨다. 우리 할머니의 20년 전의 모습을 잠시 떠올렸다. 이렇게 아파질 줄 몰랐을 때를.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 해도 마지막일 것 같은 인사를 남기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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