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2018. 8. 11. 00:00글쓰기 우당탕탕/나는야 독서쟁이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엄청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상실의 시대를 읽은 후 작가의 다른 소설에 대한 관심이 생기지 않아서 잊고 지내다 최근에 여행 에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와 이번에 소개할 책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까지 총 세 권의 책을 읽었다.

  관심 없는 작가의 책을 펼친 이유는 말 그대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책을 펴고 놀란 점은 그가 전업 작가로서 35년을 살았다는 것이고, 그 과정이 성실하고 평범했다는 것이다. 내가 말한 평범이란 작가의 재능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나와 같은 면모가 있다는 것이다. 나에겐 작가란 영화 <트럼보 (Trumbo, 2015)>달튼 트럼보같은 사람이었으니. 담배를 입에서 떼는 법이 없고 글이 안 써지면 난폭해지는 그런 이미지였다


(달튼 트럼보. 어디서나 담배를 피며 글을 쓴다)


(달리기하는 하루키. 마라톤을 즐겨할 정도로 달리기 매니아이다)


 

  하지만 하루키는 아니다. 적어도 책으로 만난 그의 모습을 보자면. 그는 장편 소설을 집필 할 땐 200자 원고지 20매씩 매일매일 쓰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매일 한 시간씩 달리는 사람이었다. -난 무엇보다 매일 달린다는 점이 맘에 든다-

  하루키가 말하는 것들 중 몇 가지 인상적인 점들을 적어봤다. 책을 읽고 그가 한 말을 정리하자니, 오랜 대화를 나눈 기분이었다. 난 이제 그의 충고를 듣고 이야기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그가 인용한 노랫말 중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해줄 수 없다면 나 혼자 즐기는 수밖에 없지를 생각 하면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는 소설가가 되는 법

 

1. 젊은 시절 한 권이라도 더 많은 책을 읽기

 

-뛰어난 소설, 그다지 뛰어나지 않는 소설, 혹은 별 볼일 없는 소설도 괜찮다. 닥치는 대로 읽는다. 조금이라도 많은 이야기에 내 몸을 통과시킬 것. 수많은 뛰어난 문장을 만날 것. 때로는 뛰어나지 않는 문장을 만날 것.

 

2.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보기

 

-세계는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면서도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하다. 소설가란 그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자신이 보는 사물이나 사상을 세세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붙인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 주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찬찬히 주의 깊게 관찰한다. 그것에 대해 이래저래 생각을 굴려본다. 조급하게 판단을 내릴 필요는 없고 그 일의 원래 모습을 소재로서 최대한 현상(사물의 모양과 상태)에 가까운 형태로 생생하게 담아둔다.

 

 

3. 기억 속에 최소한의 프로세스=정보처리 해두기

 

-어떤 사실(인물, 사물, 현상)의 흥미로운 몇 가지를 기억해둔다.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디테일을 몇 가지 추출해서 그것을 다시 떠올리기 쉬운 형태로 머릿속에 보관해둔다.

-어떠한 세부(자세한 부분)인가 하면 어라?’ 하는 생각이 드는 구체적이고 흥미로운 세부이면 된다. 잘 성명되지 않는 것, 이론에 맞지 않거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미스터리한 것들이면 된다.

-간단한 라벨(날짜, 장소, 상황) 같은 걸 딱 붙여 머릿속에 보관해둔다.

 

난 아직 연습이 안됐으니 간단한 메모를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작업 과정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매를 쓰는 것을 규칙으로 삼는다.

-이사크 디네센의 말을 인용했다.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20매의 원고를 씁니다. 아주 담담하게.’

-좀 더 쓰고 싶더라도 20매 정도에서 딱 멈추고, 오늘은 뭔가 좀 잘 안 된다 싶어도 어떻든 노력해서 20매까지는 쓴다.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정도 소요 된다.

-장기적인 일을 할 때는 규칙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말하자면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고쳐 쓰기의 과정

 

1. 초고가 완성되면 일주일정도 쉰 후 첫 번째 고쳐 쓰기에 들어간다. 첫머리부터 죄다 북북 고쳐버린다.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 등장인물의 설정이나 성격이 바뀌는 부분, 시간 설정이 맞지 않는 부분을 조정한다. 한두 달 정도 소요된다.

2. 다시 일주일쯤 쉬었다가 두 번째 고쳐 쓰기에 들어간다. 세세한 부분을 꼼꼼하게 고치는데 풍경 묘사를 세밀하게 써넣거나 대화의 말투를 조정한다. 스토리 전개에 맞지 않는 점은 없는지 점검하고, 한 번 읽어서 알기 어려운 부분은 쉽게 풀어 쓴다.

3. 다시 한 숨 돌리고 그 다음 고쳐 쓰기를 한다. 어떤 부분의 나사를 단단히 조여야 할지, 아님 조금 헐렁하게 풀어둘지를 결정한다.

4. 한 차례 긴 휴식 취하며 작품 양생, 일명 재워두기. 보름에서 한 달쯤 작품을 서랍 속에 넣어두고 그런 게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후 다시 세세한 부분을 철저히 고쳐 쓴다. 깊이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이 가능하다.

5. 제삼자의 의견 묻기. 작가의 경우는 아내. 한 가지 규칙이 있는데, ‘트집 잡힌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어찌 됐건 고친다는 것. 비판받은 부분만 집중적으로 고쳐나간다. 다시 읽어달라고 하고 고치고 읽어달라고 하고 고치고를 반복, 반복, 반복한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처음부터 수정해서 전체적인 흐름을 확인, 조정한다.

6. 편집자에게 정식으로 읽어달라고 한다. (헉헉)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는 피지컬한 업, 그것을 위해 하는 것

 

삼십년 넘게 거의 매일 한 시간 정도 달리기를 한다.

 

-소설가의 기본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이 말을 바꾸면 의식의 하부에 스스로 내려간다는 뜻이다. 치밀한 이야기를 할수록 내면의 지하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어둠의 힘에 대항하려면 그리고 다양한 위험과 일상적으로 마주하려면 피지컬한 강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건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라고 생각하며 달린다.

-육체적인 운동과 지적인 작업의 일상적인 조합을 통해 작가가 행하는 창조적인 노동에 이상적인 영향을 끼치는 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생각하는 재능과 행운

 

-소설 쓰는 재능

 

-강력하고 풍성한 재능이 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꽃피는 법?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 재능이 땅속의 비교적 얕은 곳에 묻힌 것이라면 그대로 놔둬도 자연스럽게 분출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것이 상당히 깊은 곳에 묻힌 것이라면 그리 쉽게 찾아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풍성하고 뛰어난 재능이라고 해도, 만일 마음먹고 좋아, 이곳을 파보자라고 실제로 삽을 들고 파내지 않는다면 땅속에 묻힌 채 영원히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

 

-행운

 

행운이란 말하자면 무료입장권 같은 것 같은 것입니다. (중략) 그 입장권이 있으면 당신은 행사장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하지만 그냥 그것뿐입니다. 입구에서 입장권을 건네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할지, 거기서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취하고 혹은 버릴지, 거기서 생기게 될 몇 가지 장애물을 어떻게 뛰어넘을지,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재능이나 자질이나 기량의 문제고, 인간으로서의 기량의 문제고, 세계관의 문제고, 또한 때로는 극히 심플하게 신체력의 문제입니다. 어쨌든 그건 단순히 행운이라는 말만으로는 미처 다 처리되지 않는 사안입니다.